- 부산마약퇴치본부장 계기
- 약물 중독 예방·퇴치 힘써
- 전문성 위해 석·박사 취득
- 지역 마약중독자 유독 많아
- 의료·복지 차원서 관리해야

40년간 약사 생활을 하며 그 절반을 본업만큼 시간과 공을 들여 ‘마약퇴치 운동’을 위해 뛰어다닌 사람이 있다. 그가 2011년 만든 마약 사범의 재활 프로그램은 현재 전국 8개 교도소에서 시행되고 있다. 프로그램을 만들기에 앞서 마약류 재소자에 제대로 된 재활 교육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마약정책 관련 석·박사 학위까지 땄다. “당신은 마약퇴치를 공부할 때 제일 반짝반짝하네요.” 20년 이상 마약퇴치 운동에 발품을 판 남편에게 아내가 종종 하는 말이다.

	이철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는 최근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이유와 20여 년 전 마약퇴치 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주인공은 교도소 내 표준화된 마약 예방 프로그램을 개발한 공로로 세계마약퇴치의날(6월 26일)을 기념해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이철희(68)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감사다. 최근 그가 운영하는 동래구 명륜동 약국을 찾았다. 그는 1998년 부산시약사회장과 함께 마약퇴치운동본부 부산지부장(현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장)을 맡으면서 ‘마약 사범’과 인연을 맺었다.

“마약퇴치운동본부는 1992년 약사회 전국 회원이 마약퇴치운동본부 설립을 위해 기금을 모아 설립했습니다. 약사회 산하 전국 광역시·도지부에도 마약퇴치운동본부 지부를 두었고, 자연스럽게 시 약사회장이 마퇴본부를 맡았습니다. 약사회장은 2년 했지만 부산마약퇴치운동본부장은 2008년까지 11년간 했습니다. 이후에도 교정시설 등에서 재활프로그램 강사 및 고문, 감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마약퇴치 관련 직책을 맡다 보니 약물예방 교육 강의 요청도 들어왔다. 약 전문가로서 ‘약물 관련’ 교육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부산교도소에서 진행한 첫 강의는 한 마디로 실패였다. “강의를 하자마자 한 수용자가 ‘약을 해 본 적 있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약을 해 본 경험도 없는 당신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냐’는 식으로 바라보는데, 어찌나 분위기가 냉랭하던지 앞이 캄캄했습니다.”

무관심한 수용자들의 반응을 보며 그는 마약류 중독과 중독자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예방교육은 월 1회 1시간씩 형식적이었습니다. 제대로 해야 되겠다 싶어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과정의 ‘알코올·약물 상담 전문가 과정에 들어가 평일은 온라인으로, 토요일에는 서울로 가 강의를 들었죠. 그렇게 1년 공부한 뒤 부산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공부하느라 술도 딱 끊고요.” 내친김에 마약정책 관련으로 동의대에서 박사 학위도 땄다. 그가 마약사범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까지는 이처럼 탄탄한 준비가 뒷받침돼 있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의 핵심은 마약 중독을 인식하고, 마약을 끊는 동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효과도 나타났다. 법무부와 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1~2013년 출소한 수용자 중 3년이 경과 후(2015~2017년), 교육 미이수자·이수자의 재입소률을 보면 2015년 42.3%·37.4%에서 2017년 47.2%·39.6%로 차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마약 사범의 수는 갈수록 늘고 있다. 부산은 10만 명당 마약사범 수가 35명(지난해 기준)으로, 전국 평균(24.3명)보다 높다. 그는 형사처벌을 위주로 한 마약 정책의 한계점을 지적했다. 그는 “마약 중독은 세계보건기구가 공식적으로 정한 정신질환이지만, 국내 마약사범 1인당 연간 치료 비용은 1만 원대에 불과하다. 정부가 마약 사범의 치료·재활을 우선 정책으로 정해 충분한 예산 확보는 물론 마약류 중독 문제를 형사사법적 차원이 아닌 보건의료와 복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마약퇴치 전략을 ‘마약 없는 사회’가 아닌 ‘마약으로 인한 피해 최소화’에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 약학과를 졸업한 후 평범한 약사의 길을 걷다 부산교도소에서의 미숙했던 첫 강의 때문에 마약퇴치운동 전문가가 된 이 감사는 “실효성 있는 마약 예방을 위해 마퇴본부와 함께 더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임은정 기자 iej0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