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과 소통하는 新문화 기획

- BGM 틀고 모노드라마 처럼
- 종이에 동화·노랫말 써 내려가
- “관람료 받아 알찬 무대 만들 것”
- 한글날 기념 전통 공연도 준비

“우리 문화에서 한자가 중요하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매력이 없습니다. 이제는 젊은 세대에게 서예를 요구할 게 아니라 서예가 젊은 세대에 맞게 탈바꿈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글씨 콘서트를 시작했어요.”

글씨콘서트라는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열어가는 사천의 여류 서예가 윤영미 원장.

경남 사천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는 윤영미(여·48) 원장은 무대에서 ‘이야기’와 ‘붓 놀림’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취미로 기타동아리 활동을 하는 그에게 친구가 공연을 요청하기에 ‘서예가니까 글씨로 공연하겠다’며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인 게 시작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특정 주제를 설명하며 글씨 퍼포먼스를 곁들여 청중과 만난다. 지금까지 서예가가 세상과 만나는 방법은 ‘전시’뿐이었는데, 윤 원장은 ‘공연하는 서예’로 좀 더 친근하게 현대인에게 다가선다. “붓을 세워야 붓놀림이 부드러워진다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이야기해봐야 무슨 소용인가요. 젊은 세대는 붓 잡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데.” 학원을 운영하면서 느낀 점을 토대로 윤 원장은 ‘서예는 붓에 먹을 찍어 종이 위에서 노는 것’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한 그의 글씨 콘서트는 연극의 모노드라마를 닮았다.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시, 동화, 노랫말 등을 관객이 알아듣기 쉽게 풀어나간다. 어떤 때는 친구와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연인과 나누는 언어일 수도 있는 말이다. 화선지를 펼쳐 놓고 글씨를 써 내려가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관객은 집중한다.

지난해 창원시 과학교사 연수회에서 공연했을 때는 관객 180명의 이름을 미리 파악해 이름을 쓴 가방을 소품으로 무대에 올려뒀다. 관객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가방을 찾는 데 재미를 붙이더니 이내 윤 원장의 공연에 빠져들었다. 공연은 2시간 동안 진행됐는데, 가방을 받으려는 사람이 줄을 이어 1시간30분이 더 걸렸을 정도로 대성황이었다. 윤 원장의 공연을 본 사람들은 글씨를 써달라며 손수건이나 모자 등을 내밀기도 하는데, 어떤 때는 명품 가방이나 옷에 글씨를 써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도 있어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고. 윤 원장은 “무대도 좋고 공원이나 고궁, 크루즈선에서도 좋다. 음악가가 버스킹 공연을 하듯 어디서나 붓 한 자루 들고 공연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한글날인 오는 10월 9일 사천문화예술회관에서 개최할 ‘순원의 글씨 콘서트’를 준비하는 데 바쁘다. 이 콘서트는 작품 전시를 겸한 공연으로 높이 3ｍ, 길이 50ｍ인 벽면을 훈민정음과 농가월령가 등을 쓴 붓글씨로 가득 채울 생각이다. 이뿐만 아니라 천장과 바닥도 온통 화선지에 쓴 붓글씨로 도배하다시피 꾸밀 계획이다. 마음 같아서는 장사익이나 나훈아같이 소리나 노래로 공연장을 꽉 채우는 그런 공연을 하고 싶다고 한다.

얽매이지 않는 공연을 하려고 각종 지원금은 받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관람료를 제대로 받아 예술을 관람할 때 정당하게 대가를 치르는 풍토를 만들고 싶어 자신은 관객이 후회하지 않을 만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을 만한 공연을 하겠다는 각오다. 윤 원장은 “예매를 아직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100여 명이 돈을 맡겨놓고 표를 달라고 한다”며 “나를 알고 내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려 무대를 열심히 꾸미겠다”고 말했다.

경남 진주 출생으로 1999년 사천에서 서예학원을 연 윤 원장은 대구 계명대학교 서예과를 졸업하고 경기대학교 전통예술학과에서 ‘제백석의 회화와 전각의 조형미’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서 서예를 강의하고 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