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0평 집 개조해 문화촌 꾸며
- 막걸리학교서 고급 강좌 수료
- 우리 밀 등 친환경 재료 엄선
- SNS에 제조법 올리며 인기
- 거쳐간 수강생만 100명 넘어

“우리 전통술은 조선 시대에는 백주(白酒)라 하여 일반 백성들이 가정에서 담가 먹었기 때문에 그 종류도 800가지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가 주세령으로 세금을 거두면서 백주가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양조장 도가 술’이 나타나 이것을 ‘우리 술’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로잡고 우리 조상의 지혜와 풍류가 녹은 우리 술 문화를 정립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입니다.”

최인태 사천 막걸리 문화촌장이 자신의 집 정자에서 술맛을 좌우하는 밑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남 사천에서 ‘막걸리 문화촌’을 세우고 최근 모집한 수강생과 함께 ‘조선의 술’인 백주를 재현하는 데 공을 들이는 최인태(64) 촌장. 그는 막걸리는 ‘이제 막 걸렀다’ ‘금방 걸렀다’ ‘거칠게 걸렀다’라는 개념의 언어일 뿐 술을 통칭하는 언어는 아니라고 말한다. 술의 통칭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전통주’ ‘우리 술’ ‘가양주(家釀酒)’ 등으로 불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누룩과 고두밥 등으로 만든 술을 막걸리라 부른다. 농가에서 일할 때 먹으면 농주, 맑으면 청주, 흐리면 탁주, 증류했으면 소주라 하고 제조방법에 따라 발효주와 증류주로 나누기도 한다. 또 공정에 따라 단양주와 이양주, 삼양주 등으로 나누고 주세를 피해 몰래 담가 먹었다 하여 밀주라고도 했다.

최 촌장은 이렇게 이름이 많은 우리 술의 고유 맛을 재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술 문화’를 복원하고 가꾸는 일도 중요하다며 자신의 집에 정자를 짓고 창고를 개조해 ‘막걸리 문화촌’을 열고 우리 술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2015년 ‘당신은 막걸리하고 맞다’는 동네 한의원 원장을 말을 듣고 ‘그래! 그러면 해볼까?’라는 마음으로 막걸리 배우기에 나섰다. 사천읍에 있는 230여 평의 집을 단장하고, 부산 부산진구에 있는 막걸리학교에서 초급반과 중급반 6개월 과정을 거쳤다. 그래도 배움에 목말랐다. 이번에는 서울 경복궁 막걸리학교에서 실습 위주의 고급반 강좌를 듣고 ‘주인상 학교’까지 마쳤다. 매주 고속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호기심과 배움의 즐거움 때문에 초등학교 때 소풍 가던 기분으로 다녔다.

최 촌장은 술을 담글 때 재료를 엄선한다. 친환경 우렁이 농법으로 생산된 쌀에다 앉은뱅이 우리 밀로 만든 진주 누룩을 쓴다. 술은 쌀가루 1.2㎏에 끓인 물 1ℓ를 조금씩 부으면서 범벅을 만들고, 누룩 500g을 더해 밑술을 만든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밑술에 고두밥 2㎏과 물 2ℓ로 덧술을 해 20∼25도의 온도에서 1달가량 두면 된다. 여기서 가라앉은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담가 100일을 숙성시키면 더 좋다. 우리 술은 발효와 숙성이 중요하다. 미생물인 효모와 효소가 술을 만들고 사람은 그 미생물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이란다.

이 같은 경험과 막걸리 제조법을 SNS에 올리니 이번에는 배우고 싶은 사람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막걸리 문화촌이 만들어졌다. 학원에서 30강 하는 분량을 6강으로 줄였다. 집이 좁아 1기에 8∼10명씩만 받았는데 지금까지 100명 넘게 거쳐 갔다. 지난해까지는 명절과 정월 대보름, 단오, 백중, 동지 등에 술 파티를 했으나 올해부터는 2개월에 한 번 정도 문화행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최 촌장은 “모든 것이 첨단으로 치닫는 요즘이지만 먹거리만큼은 친환경이니, 유기농이니 하면서 옛것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쌀 소비도 촉진하고, 외국산 술 수입도 억제하면서 건강한 우리 술을 나누는 건전한 문화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했다.

젊은 날 그는 지역의 대표적 진보 인사로 꼽혔다. 사천에서 발행된 동인지 ‘마루문학’ 2호에 자신의 시 ‘영농일기 3’이 검열에 걸려 수정되면서 펜을 놓고는 온몸으로 행동했다. 오랫동안 사천 민주시민의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를 이끌었고, 사회과학전문서점을 운영하면서 진보의 구심체 역할을 했다. 나중에는 사천 민주단체협의회를 만들어 초대 상임대표를 지내며 진보세력을 이끌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