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전·현직 판사 ‘사법농단’
- 국민 신뢰 잃어 책임감 막중

- ‘정치의 사법화’ 현상 심해져
- 오로지 법관 양심에 맡길 것
- 시민 사법행정 참여도 유도

사법부가 전례 없는 혹독한 시기를 거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위시한 전·현직 판사들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마저 땅에 떨어졌다. 최근 만난 이강원(59·연수원 15기) 부산고등법원장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판 독립을 더욱 확고하게 지켜냄으로써 존중받는 법원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무거운 책임감을 드러냈다. 지난달 15일 취임식을 가진 이 원장은 앞으로 1년간 부산고등법원을 이끌게 된다.

이강원 부산고등법원장은 국민의 법 감정에 귀 귀울이고, 시민의 사법행정 참여율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이 원장은 최근 정치·사회적 갈등을 사법 영역에 내맡기는 ‘정치의 사법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위협한다며 깊은 우려를 표했다. “입법이나 국민 다수의 뜻으로 해결하기보다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게 손쉬운 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을 정치적으로 소외시키는 한편 재판에서 정치 권력의 영향을 받는 ‘사법의 정치화’를 초래할 수 있어요. 사법심사를 하면서 입법·행정 영역이 받아야 할 국민의 심판을 사법부가 대신 떠안게 되는 거죠.”

그는 이러한 때일수록 법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켜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법관의 재판 독립을 해칠 수 있는 내·외부의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정한 사무 분담과 근무평정을 통해 법관이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렇듯 사법부의 판단 영역이 커지면서 재판부 판단을 놓고 국민의 쓴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양형뿐 아니라 영장 발부 여부에 따라 법관 개인이 국민의 심판대에 오르기도 한다. 이 원장 역시 법원의 판단에 대해 건전한 비판이 아니라 개인에 대한 비판으로 나가는 부분을 유감스럽게 여겼다. 그는 “재판 결과는 여론과 다를 수 있고, 여론은 선거 때마다 집권 정당이 바뀌듯 변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법은 변하지 않는 정신이 있다. 인간의 가치가 훼손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법관이 여론을 철저히 외면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령 세월호 사건을 재판할 때 국민의 뜻이나 염원을 담은 것 또한 양심에 따른 법관의 독립된 판단이라는 것이다. “법관이라고 해서 국민들의 목소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조변석개하는 여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항구적인 시대정신을 잘 살펴서 재판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죠. 법관이 국민의 정서나 염원을 살펴 재판에 반영하는 것도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임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국민의 법 감정에 귀 기울이는 이 원장은 창원지법원장 시절 시민에게 먼저 다가가고 함께 호흡하는 행정을 펼쳐 주목을 받기도 했다. 찾아가는 캠퍼스 법정, 외부기관 연계 조정으로 재판절차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제고시키는 한편 ‘사랑법원의 따뜻한 법 이야기’라는 제목의 공익광고를 제작해 방영하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시민사법위원회를 더욱 활성화시키겠다는 구상이다. “2012년 발족한 시민사법위원회가 잘 운영되고 있던데, 구성을 다양하게 하는 등 시민의 사법행정 참여율을 높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서울 출신인 이 원장은 성균관대 법대를 졸업하고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9년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판사로 임관한 이래 서울중앙지법·서울고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창원지법원장을 거쳤고 환경법 연구회 회장, 한국형사소송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