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 졸업 54년 만에 부산행
- 시 건축 관련 정책 조언 역할

- 건축물은 시민 일상도 바꿔
- 문제 되는 해안선 고층건물
- 긍정 요소로 바꿀지 고민을

과거 한국전쟁 피란민이 모이면서 급속도로 팽창했던 부산은 당시 각종 건물이 무분별하게 들어선 탓에 지금까지도 도시 형태가 규칙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난개발 문제가 불거졌고, 최근에는 해안선을 점령한 고층 건물이 논란이 되고 있다.

김인철 부산시 초대 총괄건축가가 부산 도시건축의 장단점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박수현 선임기자 parksh@kookje.co.kr

이런 피란도시 부산의 건축을 새롭게 디자인할 부산시 초대 총괄건축가로 아르키움 건축사사무소 김인철(72) 대표가 지난달 임명됐다. 총괄건축가는 실무 경험이 부족한 부산시 등 공공기관이 건축과 관련한 정책을 만들고 시행, 관리하는 과정에서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한다. 서울에서 시작해 이제 전국 광역시로 총괄건축가 제도가 확대되고 있다.

사실 김 건축가가 부산시 초대 총괄건축가로 임명되면서 “서울에서 온 건축가에게 부산의 도시건축 총괄 자리를 위임한다”며 문제를 제기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김 건축가는 부산과 인연이 깊다. 경남 진해에서 중학교까지 다녔지만, 고등학교를 부산 경남고로 진학했다. 김 건축가는 “부산이라고 하면 중구 남포동과 중앙동 같은 원도심을 떠올렸는데 지금은 고교 시절 소풍 가던 해운대와 당시 시골이던 서면이 위주가 돼 도시가 재편됐다. 상전벽해 수준이 아니라 전혀 다른 도시가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고교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이다. 하고 싶은 음악 미술 등을 접하며 건축가에게 필요한 감수성과 상상력을 키웠다. 부산은 내가 건축가로 완성되는 데 바탕을 제공했다”며 부산과의 인연을 소개했다. 김 건축가는 부산과 인연이 깊은 승효상 건축가의 권유를 받아 총괄건축가를 맡게 됐다고 한다. 경남고를 졸업한 뒤 무려 54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김 건축가는 “건축물은 개인 소유물이라도 시민이 공유하는 공유재의 성격을 띤다. 건축물로 인해 시민의 일상이 달라지기도 한다”며 도시 건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가 인식하는 부산 도시건축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일까. 김 건축가는 먼저 해안선을 점령한 고층 건물을 언급했다. 김 건축가는 “부산은 바다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조성된 도시다. 그런데 내륙에서 짓는 아파트 형태를 해안선에 그대로 적용하면서 바다와 도시 사이에 벽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이어 “총괄건축가로 임명되기 하루 전 해운대 백사장을 갔는데 대비된 풍경에 깜짝 놀랐다. 한쪽은 동백섬과 웨스틴조선호텔이, 한쪽으로는 달맞이 고개와 엘시티 건물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김 건축가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해안선 고층건물들이) 이미 지어졌으니 어떻게 하면 이들을 긍정적 요소로 보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부산의 도시건축이 가진 장점으로는 개방성을 들었다. 김 건축가는 “어떤 시도를 해도 부산은 이를 받아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진보적 진취적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이를 활용해 더는 서울과 서구를 벤치마킹하지 않고 부산만의 것을 하자고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민교육의 중요성도 언급했다. 김 건축가는 “우리 도시건축은 양적으로 발전했지만, 질적인 문제가 많다. 똑같은 형태의 아파트가 도시 풍경을 점유하고 있다. 건설사에서 집을 지어도 수요자가 원하지 않으면 이를 외면하는 등 시민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건축가가 총괄건축가로 임명된 지는 아직 3주가 채 지나지 않았다. 그는 현재 부산이라는 도시를 구체적으로 실태를 파악하는 중이다. 김 건축가는 “말 그대로 ‘부산스러운 도시’를 만들도록 하겠다. 2년이라는 임기 동안 적어도 방향성은 마련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홍익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1986년 인제건축(현재의 아르키움)을 설립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건축문화진흥분과 위원, 서울건축포럼 의장,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총괄건축가 등을 맡아 왔다.

김영록 기자 kiyur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