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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피플] 박기권 옥곡마을 노인회장

‘젊은 노인’ 챙기는 내년 100살 노인회장님

  • 국제신문
  •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  |  입력 : 2019-02-14 20:26:41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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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에도 마을 궂은일 자처
- 홀몸에 불편하고 아픈 이웃
- 관리사·간병인 역할 도맡아
- 지역 공로상 수상경력 다수

“자식들이 몇 년 전부터 집에 있으라고 하지만 그러질 못하겠어. 혼자 사는 동네 할머니들이 아파서 밥도 못 먹고 약도 못 사오는데 딱해서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나이도 많고 몸도 예전 같지 않아서 이제는 노인회장직을 내놓고 싶어.”

경남 사천시 곤양면 남문외리 옥곡마을 노인회 박기권(99) 회장이 마을 할머니를 사륜 오토바이에 태워 병원으로 향하고 있다. 이완용 기자
경남 사천시 곤양면 남문외리 옥곡마을 박기권 할아버지는 올해로 15년째 노인회장을 맡고 있다. 올해 아흔아홉 살로 전국 어디를 찾아봐도 보기 어려운 고령 노인회장이다. 그래도 자신보다 ‘어린 노인’을 돌보느라 마을의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한다. 박 회장은 오는 정월 대보름날 열리는 노인회 정기 총회 때 회장직을 내놓겠다고 벼르고 있지만, 주민 대부분은 계속 맡아주길 바란다.

박 회장은 11년 전 다리뼈를 다쳐 6개월 요양한 때를 빼면 평소 감기도 한 번 앓지 않았을 정도로 건강하다. 늦가을에 감을 따지 못해 걱정하는 친구를 도우려고 감나무에 올랐다가 가지가 부러지면서 다리뼈를 다쳤다.

그는 요즘도 하루 1, 2번씩 마을을 둘러본다. 몸이 불편한 마을 노인이 집 안에서 움직이는지, 누워만 있는지 살핀다. 40여 명인 마을 노인의 거동을 살피는 게 박 회장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다. 식구 없이 혼자 살면서 몸이 아픈 할머니가 있으면 약을 챙겨주고, 밥상을 차려 줄 때도 많다. 노인회장으로서 회원 관리를 넘어 홀몸노인 관리사나 간병인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마을 할머니들에게 그는 ‘119응급 구조대’나 다름없다.

아버지 몸부터 돌보라며 말리던 아들도 “기왕 다니려면 안전하게 다니시라”며 아버지의 이륜 오토바이를 사륜 오토바이로 바꿔줬다.

이처럼 자상한 박 회장은 마을 사람들에게 ‘할배’로 통한다. 마을 할머니가 박 회장을 찾으면 주로 약을 타거나 진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할 때다. 병원이 500m 내에 있지만 아픈 몸에는 천리 길이다. 택시나 구급차를 부르기가 마땅찮기에 만만한 ‘할배’를 찾는다. 박 회장의 사륜 오토바이 뒷좌석은 마을 할머니들 자리다.

박 회장은 혼자 생활하고 있다. 객지에 있는 자녀들이 매주 반찬이나 빨래를 해 주고 가지만 직접 밥을 지어 먹으며 고향에서 살고 있다. 부인(93)이 2년 전 집 근처 요양원에 입원해 있어 자주 들러보는 것도 일이다. 5남매에 15명의 손주와 7명의 증손주까지 있지만, 자식들에게 ‘짐이 되기 싫다’며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고향에 있겠단다.

박 회장의 선행은 이뿐 아니다. 젊었을 때는 마을 이장도 하고 1970년대 산림녹화를 맡은 산림계 일도 했지만, 농사일에 손을 놓은 80살 이후로는 퇴계 선생을 모신 작도정사에서 10여 년간 총무를 맡아 활동하기도 했다. 또 곤양향교에서는 장의를 맡아 유풍 진작에도 힘썼다.

사천시장과 지역 기관장 등으로부터 받은 공로상, 표창장, 감사패 등이 수십 개에 이른다. 전 곤양면장인 김성엽(89) 씨는 “형님은 젊었을 때부터 부지런하고 정이 많았다”며 “백 살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노인이, 자녀나 행정당국이 하지 못하는 역할을 대신하고 있어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몸이 아파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 딱한 마을 사람을 보면, 그래도 몸이 멀쩡한 내가 도움이 되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해나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내 이웃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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