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서 중2때 처음 샅바 잡아
- 무릎 부상 후 지도자로 변신
- “작년 전국대회 잇단 선전에도
- 체전 성적만 부각돼 아쉬움
- 국민스포츠 옛 명성 회복하길”

지난해 말 씨름판에는 2000년대 들어 가장 큰 낭보가 전해졌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씨름이 등재된 것이다. 단순히 이름을 올린 것이 아닌 남북 최초의 공동 등재였다. “남북의 씨름은 정신과 육체를 함양하는 동시에 마을 공동체의 단결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 그 연행과 전승 양상, 공동체에 대한 사회·문화적 공통점이 있다”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의 설명은 민족의 세시 풍속이자 스포츠인 씨름의 가치를 일깨운다.

	부산갈매기씨름단 김태우 감독이 최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씨름이 남북 공동으로 등재된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지역 유일의 씨름 실업팀 부산갈매기씨름단의 김태우(52) 감독에게도 유네스코 등재는 남다르다. 최근 만난 김 감독은 당시를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아…. 열심히 노력했던 게 드디어 빛을 볼 수 있어 더욱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3년여 전 그는 대한씨름협회 총무이사를 맡고 있었다. 유네스코 등재 신청을 준비하며 영상 등 홍보물을 만드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김 감독은 “바통을 이어받은 지금의 협회 관계자들이 매듭을 잘 지어줬다. 남북 화해무드도 큰 힘이 됐다”고 웃어 보였다.

씨름 발전에 인생을 바친 김 감독의 곁엔 늘 모래판이 있었다. 부산 토박이인 그는 부산진중 2학년 때 처음 샅바를 잡았다. 지금은 사라진 혜광고 씨름부를 거쳐 동아대를 나왔고, 조흥상호신용금고 씨름단에서 4년간 프로 선수로 뛰었다. ‘제2의 이만기’ 소리를 들을 정도로 꿈도 컸다. 김 감독은 “프로에 와서 한창 좋아지는 시점에 무릎 연골을 심하게 다쳐 결국 선수 생활을 접었다. 장사를 한 번도 못 해 본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은퇴 뒤에는 모래판에서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98년 동아대 씨름부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02년부터 9년간 기장군 씨름단 감독을 지냈다. 기장군 씨름단 해체 후에는 시체육회 산하 팀으로 변신한 부산갈매기씨름단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부산갈매기씨름단은 지역 씨름의 위용을 전국에 떨치고 있다. 지난해 증평인삼배 전국장사씨름대회 단체전 3위를 시작으로 대통령기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단체전 준우승을 거뒀고, 전국체전에서도 경장급 우승(오흥민)과 역사급 준우승(이영호)으로 선전했다. 준수한 성적에도 김 감독은 아쉬움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시체육회 산하 팀인 만큼 체전에서 성적을 내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기대를 받는다”며 “다른 대회들은 체전에 대비한 경기력 향상의 목적으로 여겨지는 등 의미 부여가 적다”고 아쉬워했다.

김 감독은 이어 “선수들이 노력한 만큼 충분한 대가도 받지 못한다. 직업 선수는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게 당연하다. 결과를 낸 만큼 좋은 대우를 받지 못하면 다른 시·도에 지역 향토 선수를 빼앗기는 상황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2019년 새해 김 감독의 바람은 씨름이 국민 스포츠로서 옛 명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유네스코 등재와 부산 씨름의 선전 등 조건은 무르익었다. 그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김 감독은 “씨름이 한창 인기가 좋을 때 전통만 고집한 결과 우리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지 못했다. 대중이 직접 즐기거나 보는 스포츠로도 식상하다”고 냉정히 평가하며 “태권도처럼 세계 씨름으로 나가야 한다. 유네스코 등재를 계기로 정책적으로 씨름을 뒷받침해 주면 우리 문화인 씨름이 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어필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박장군 기자 genera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