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많은 상수원보호지역
- 다른 지역 학생 유치하고
- 태양광 발전시설 도입 앞장
- 환경개선 이끈 18년 귀농인
- 대학·지자체서도 벤치마킹

50년가량 상수원보호지역으로 묶여 규제 탓에 어려움을 겪었던 시골 마을이 에너지 자립 1위 마을로 거듭났다. 10년째 부산 기장군 정관읍 월평리 이장을 맡고 있는 한광열(63) 씨가 마을을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평리 한광열 이장이 월평리를 에너지 자립 마을로 탈바꿈시킨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서순용 선임기자 seosy@kookje.co.kr

한 이장은 귀농 18년 차 농부다. 2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지내는 모친을 위해 귀농한 그는 마을 이장 일과 더불어 본업인 여주, 우슬, 엉겅퀴 농사를 짓고 있다. 한 이장의 명함에는 프로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에너지 자립 마을 월평리 이장을 포함해 ▷정관삼부복지회관 건립추진위원장 ▷ ㈔정관주민자치회 이사 ▷농촌건강장수마을 대표 ▷무농약 여주 달팽이 농사 등이다.

직함이 말해주듯 한 이장은 지난 1년 새 많은 일을 했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는 이유로 수십 년째 마을에 병·의원이 들어서지 않자 지난 8월 상수원보호구역 내 의원 유치를 허용해 달라는 민원을 주민 1000여 명의 서명과 함께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는 “상수원보호지역이다 보니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없고 목욕탕도 없어 주민들이 원정 목욕을 가야 할 판”이라며 “서명을 제출했지만 아직 환경부 답변은 듣지 못한 상태”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학생 수 부족으로 분교가 될 위기에 놓였던 월평초등을 다른 지역에서 오고 싶어하는 학교로 만든 것도 그의 작품이다. 한 이장은 학군 조정과 유치원 유치 등을 통해 부산지역 중·고교 진학을 희망하는 타지 학생이 전학 오는 학교로 바꿔놓았다. 한 이장은 “학교가 분교 전환 위기에 처했을 때 1학년 학생이 3명밖에 없었다. 마을 주민이 모두 힘을 모아 학교를 살려 낼 수 있어서 매우 뿌듯하다”고 말했다.

마을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2년 전부터다. 한 이장은 겨울철 추위 속에서 기름값이 아까워 보일러도 제대로 틀지 못하는 마을 어르신들을 보며 태양광 설비 도입을 구상했다. 처음에는 극심한 주민 반대에 부딪혔다. 그는 “태양광 설비 문제가 많이 지적되던 때였다. 오래 쓴 제품은 작동이 제대로 안 되고 수리를 받으려 해도 제조사가 사라지는 등 문제가 많았다”고 사업 초기의 어려움을 떠올렸다. 한 이장은 설비 희망 업체를 방문해 접근성, 공사 실적 등을 꼼꼼히 살핀 다음 한 업체의 제품을 선정했다. “240만 원을 들여 우리 집에 먼저 태양광 설비를 했습니다. 에어컨을 마음껏 써도 전기료가 기존의 8분의 1 수준밖에 안 나오는 걸 보고 주민들이 너도나도 설치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마을 내 140가구 중 60가구에 태양광 설비가 설치됐다.

태양광 설비는 마을에 돈을 벌어주는 효자 역할도 한다. 마을에 지원되는 송전 설비 지역 지원금으로 마을공동창고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했는데, 지난해 이곳에서 생산한 전기 2400만 원어치를 팔아 수익을 얻었다. 강원도의 자치단체와 전주시의회, 경북대 등 전국에서 에너지 자립 사례를 배우려고 월평마을을 찾는 게 다반사다.

한 이장은 태양열 분야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우선 8가구에 태양열로 물을 데우는 설비를 시범적으로 갖춘 뒤 내년에는 마을공동창고를 지어 태양광 시설을 설치해 수익이 나면 이를 공동 지하수요금에 보태 경비를 절감하는 계획도 세웠다. 또 태양광 및 태양열 설비를 갖춘 복지관을 지어 주민 숙원인 마을 공동목욕탕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 이장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주민 모두가 힘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면 훨씬 살기 좋은 마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