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순 할머니 첫 피해 증언
- 내 가슴에 바위덩어리 달아”

- 관부재판 참여 할머니 4명
- 김문숙 부산정대협 회장 등
- 보상판결 받아낸 과정 그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최초로 증언한 김학순 할머니의 행동은 내 가슴속에 커다란 바위덩어리를 달아주었습니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를 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말이다.

영화 ‘허스토리’를 만든 민규동 감독이 영화 제작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허스토리’는 1992년부터 1998년까지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며 일본 재판부에 당당하게 맞선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이들을 도왔던 현 한국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 김문숙 회장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당시 관부 재판(시모노세키 재판)은 위안부 피해자 관련 재판 사상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보상 판결을 받아내 일본 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재판 과정에서는 큰 관심을 받지 못하다가 보상 판결 이후 이슈가 됐다. 하지만 금세 잊혔고, 관부 재판 과정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내 아내의 모든 것’ ‘간신’ 등을 연출한 민 감독은 10년 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에 대한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최근 만난 민 감독은 “할머님들이 한 분씩 돌아가셔서 계속 마음속의 빚이 있었다. 그러다 3년 전 더 늦기 전에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허스토리’를 연출한 계기를 밝혔다.

민 감독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다양한 사연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가 관부 재판 이야기를 발견했다. 당시 재판 원고단을 지원했던 후쿠야마 연락회는 6년의 재판 과정을 담은 소식지를 발행했는데, 제작진은 일어로 된 소식지를 전부 번역했다. 또한 관부 재판 기록물이나 인터뷰 등을 보며 진실을 찾아갔다.

“관부 재판은 국가의 지원 없이 고립무원의 투쟁이었습니다. 1991년 부산여성경제인연합회가 부산지역에 정신대 신고 전화를 개설했고, 여덟 분이 신고했죠. 이 분들 중 네 분이 관부 재판에 참여했고, 김 회장님이 자비로 6년간 재판을 이끌어 보상 판결을 받아냈습니다. 그 분들을 비롯해 자신이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힌 할머니들은 모든 인생을 걸고 싸운 투사이십니다.”

‘허스토리’의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김 회장(극중 문정숙 역)이었기 때문에 민 감독은 촬영 전 김 회장을 만났다. “영화이기 때문에 각색이 될 것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자신보다 할머니들에 보였으면 한다고 하셨어요. 또 재미있게 만들어서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영화 개봉에 앞서 지난달 15일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에 진행된 시사회에서 김 회장과 만난 민 감독은 “영화를 보신 후 “잘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소감과 함께 자신을 연기한 김희애 씨에게 ‘내 역할을 잘 소화해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셨다”고 전했다.

문 회장 역의 김희애를 비롯해 할머니 역의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은 인생 연기를 펼치며 우리를 20여년 전 관부 재판으로 인도한다. 민 감독은 “언젠가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선생님들이 비중과 분량에 관계없이 기꺼이 참여해주셨다. 기교와 장식 없이 진정성과 진심으로 연기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민 감독은 ‘허스토리’의 촬영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1990년대 부산을 촬영하기 위해 군생활을 했던 부산의 골목은 물론 인천 군산까지 헌팅에 나서야 했다. 일본 장면은 시모노세키에서 촬영했으며, 중국 난징에 남아 있는 실제 위안소 건물을 찾았다(이 위안소는 철거됐다).

지난 1일 경남 통영의 위안부 피해자 김복득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남은 생존자는 27명이 됐다. 1992년부터 시작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는 지난 4일 1342회가 됐다. 하지만 아직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 민 감독 가슴에 있는 커다란 바위덩어리는 우리 모두가 느끼는 무거운 짐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스토리’를 잊어선 안 된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