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서 순수문학 배웠지만
- 좋아하는 스릴러 장르 끌려
- 부산 와서 독립 출판사 차려
- ‘시간망명자’ SF어워드 대상
- 신간 ‘무저갱’ 펴내는 등 성과
- 마케팅·유통 활용해 입지 다져

부산에도 1인 출판사가 없지 않다. 그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출판사를 들라면 역시 인디페이퍼가 아닐까. 경남 마산 출생으로 서울 출판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최종인(47) 대표가 3년 전 부산에 와서 차린 출판사다. 최 대표의 취향은 뚜렷하다. 미스터리, 스릴러 위주의 대중성 높은 책. 3년간 그가 펴낸 책의 리스트만 봐도 알 수 있다.

부산의 1인 출판사인 인디페이퍼 최종인 대표가 그가 출판한 책들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재미있는 책을 내고 싶어요. 대중이 빠져들 만한 책. 저는 중앙대 문예창작과를 나왔거든요. 어떻게 보면 한국 순수문학의 본류를 길러낸 곳에서 본격문학을 충실히 배운 셈이죠. 그런데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본격문학과 맞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본격문학의 상당수가 서사가 약한 편이잖아요. 그런데 저는 서사를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책 만들 때도 이야기가 강한 작가들을 찾게 되죠. ‘시간망명자’의 김주영 작가나 이번에 ‘무저갱’을 쓴 반시연(국제신문 지난 27일 자 24면 보도) 작가도 그렇고.”

사실 말이 쉽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전국적으로도 기반이 취약한 미스터리, 스릴러 등 장르소설을 지역에서 발굴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뿐인가. 한국의 출판업은 서울에 완전하게 집중(95%)돼 있어서 책을 낸다 해도 유통망을 갖추기가 하늘의 별 따기. 그나마 서울에서 일할 때의 인맥과 노하우, 지역 동종업계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는 ‘커버’한다 해도 홍보가 어려운 것은 속수무책이다.

출판업계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며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그가 굳이 부산에 와 그의 첫 출판사를 차린 이유는 역시 ‘돈’에 있다. “자금이 아주 넉넉한 경우가 아니라면, 출판업을 시작하고 나서 ‘견디는’ 시간이 필요해요. 사무실 내고 자리 잡는 데 너무 많은 자금이 필요하면 버티지를 못하게 되니까, 시작하기에는 돈이 덜 드는 지역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부산은 제2의 도시라서 지원사업도 꽤 있을 테니 거기에 기대볼 수도 있겠다 생각했지만, 출판 관련 지원은 알고 보니 별로 없더라고요. 온라인 서점이 커지면서 옛날보다 마케팅이나 유통이 용이해져서 그나마 해나가고 있습니다.”

다행히 그의 작업은 작으나마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역 작가 김주영 작가가 쓰고 인디페이퍼가 펴낸 장편소설 ‘시간망명자’는 지난해 국립과천과학관이 주관하는 ‘2017 SF어워드’ 대상을 받았고, 올해에는 그 책의 판권을 중국에 수출했다.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밀정이 미래로 가서 연쇄살인사건의 내막을 파헤친다는 내용의 하드보일드 SF스릴러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도서원작 판권을 판매하는 행사인 ‘북투필름(Book To Film)’ 피칭작으로 선정돼 멀티콘텐츠화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중국에서 이 책의 판권을 사들인 ‘과환세계’는 세계 최다 부수의 SF잡지를 내는 중국 출판사로, 곧 중국어판 책이 나올 예정이다. “중국에 북투필름과 비슷한 행사가 있어요. 자료를 만들어 그 행사에서 소개했고, 출판사와 연결이 됐죠.”

그냥 서울에서 출판사 다니며 경력을 쌓았다면 고생은 덜하고 생계는 안정적이었을 텐데, 그는 왜 생활 터전까지 옮기며 1인 출판사를 차렸을까. “나이가 점점 드니까 관리직으로 승진하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원래 내가 하고 싶던 일, 책 기획 업무에서 점점 멀어지게 되는 거예요. 책과 관련한 다양한 일을 해보고 싶고 기획·편집 일도 계속하고 싶고…. 그래서 모든 일을 내가 결정하고 처리하는 나만의 출판사를 차려보자 싶었던 거죠. 일단은 잘 자리 잡는 게 목표입니다만, 현재로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노안이네요. 농담 아니고 출판에서는 진짜 중요한 문제거든요.”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