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부터 상차림 복원 일
- 전통음식 권위자 모두 만나
- “직접 근거 찾아 하라” 결론

- 작업 맡으면서 배움 갈증 커
- 환갑 넘어 박사과정 시작
- 통신사 전별연 논문 목표

“2006년에 조선통신사 사업부에서 전화를 해서는 대뜸 묻더라고요. ‘국조오례의’를 아시느냐고. 잘 모른다 했더니 전통요리를 하신다면서 그것도 모르시냐고 하길래 정신이 번쩍 들고 약이 바짝 올랐죠. 그게 해신제 상차림 복원에 매달린 시작이네요.”

신유한의 ‘해유록’에 근거해 조선통신사 해신제 상차림을 복원한 이경희 박사.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부산 문화요리학원 원장인 이경희 박사는 조선통신사 해신제 상차림 복원자다. 조선통신사의 성공적인 사행과 무사귀환을 빌던 해신제는 조선 시대 국가 제사인 길례를 바탕으로 치러졌다. 통신사 사업부에서 이 박사에게 ‘국조오례의’를 아느냐고 운을 뗀 것도 그런 이유다. 어쨌든 이 박사는 2006년부터 해신제 원형복원 추진위원이 돼 상차림을 복원하는 일을 맡게 됐다.

“처음부터 부산의 유림을 찾았다면 일은 좀 더 쉬웠겠죠. 그런데 그때는 무작정 경북 안동 등 지역의 양반 종가를 찾아다녔어요. 일반 가가례(家家禮)를 연구하면 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 거죠. 안동에서는 종가마다 찾아가 제사 음식 정보를 묻고 다니니까, 사기꾼인 줄 알고 거기서 통신사 사업부로 전화해 정체를 확인하기도 했어요. 6개월간 정말 방방곡곡 발품 팔며 다니다가, 이건 길례에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그 걸음에 서울로 가서 권오흥 전 성균관석전교육원장을 만났어요.”

그 과정에서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를 비롯해 내로라하는 전통음식의 권위자는 거의 다 만나 자문을 했다. 상차림에 관한 기록은 있어도, 조리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은 다 같았다. “그 연구는 부산에서 하는 수밖에 없지요. 선생이 근거를 찾아서 하셔야지, 누가 하겠습니까.” 한마디로 자알~ 하시기 바란다는 거였다.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국가의 제는 규범이 있는데, 신유한의 ‘해유록’에 기록된 1719년 조선통신사 해신제는 그 규범과 달랐다. “지방에는 식재료와 물품이 귀하니까, 교통이 열악했던 당시에 제물을 조달하기 어려웠던 거죠. 유기를 못 구해 화자기로 대체하기도 했어요. 유림에서는 그래도 나라 제사의 규범에 맞춰 복원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런데 이건 조선통신사 해신제니까, 1719년 ‘해유록’에 나온 기록대로 복원하는 게 더 의미가 크다고 판단했어요. 물론 그렇게 하는 이유와 당시 사정은 세세하게 기록으로 남겨야죠.”

이 박사는 이 사업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인생에 엄청난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고 했다. “30대 후반에 요리를 시작했어요. 더 배우고 싶어 경남정보대 식품영양과에 늦깎이로 입학했고, 이후 동의대에 편입해 2004년에는 동의대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죠.” 해신제 복원 일을 하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이 더 커졌다. “통신사 학술위원들의 내공이 대단합디다. 그들과 함께 일을 하려면 더 정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환갑 넘어서 부산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했어요. 공부가 그렇게 힘든 거였어요. 사람들은 저 나이에 학위가 탐나 그러나 했겠지만, 저는 통신사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그에게 남은 과제가 있다. 하나는 해신제에 관한 자신의 2009년 논문을 보완하고, 통신사 전별연에 관한 논문을 써 후대 연구자를 위한 기록을 완성하는 것이다. 천한 ‘여인의 일’이라 여겼기에 해신제상 조리법에 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게 이 박사의 생각. 그만큼 제대로 된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다른 하나는 남옥의 ‘일관기’라는 또 하나의 통신사 기록에 담긴 비밀을 푸는 것. “‘해유록’에 없던 배 10개가 그로부터 50년 뒤 통신사 제상에 등장해요. 암만 머리를 굴려봐도 이걸 올릴 자리가 없는데, 이걸 알아내려면 또 골치가 좀 아프겠죠. 하하.”

신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