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누빈 강진숙 씨는 현직 교사다. 동래여고 국어 교사. 그리고 최근 여행책 ‘상파울루에 내리는 눈’(물음책방)을 펴냈으니 이제 여행작가이기도 하다. 51세의 그가 처음 여행을 한 것은 27세였던 1994년이다. 역시 교사인 친구와 함께 대출을 받아 여행경비를 마련한 뒤 30박31일 여정을 계획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낸 것이었는데 막상 가보니 ‘어디든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렇게 여행 인생이 시작됐다.

이듬해 결혼했고 그다음 해 딸이 태어났다. 딸이 네 살 되던 해 할머니의 고향인 일본 미야자키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딸인 이산들 씨의 20년 여행 인생도 그렇게 시작됐다. 엄마와 딸은 참으로 많은 나라를 여행했다.

“경비가 빠듯했죠. 그래서 언제나 돈 덜 드는 배낭여행을 했어요. 밥은 여행지의 전통시장에서 사 먹고 잠은 도미토리에서 잤죠. 몸이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땐 저렴한 호텔에서 묵기도 했지만, 대부분 도미토리였어요. 참, 그리고 딸은 사교육을 거의 안 했어요.”

강 씨 부부는 딸에게 늘 얘기했다. “학원 보내지 않는 대신 세상을 보여줄게.” 부족한 학습은 홈스쿨링으로 메우려고 애썼다. 동료 교사들이 나중에 어떡하려고 그러느냐고 걱정할 정도였다. 실제로 초등학교 때는 성적이 뒤처져서 딸이 의기소침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은 때도 있었지만 지금 딸은 엄마에게 “그래 줘서 고맙다”고 한다.

다녀본 곳 중 어디가 가장 좋았느냐고 묻자 고민 끝에 남미라고 말했다. “볼리비아에서 쪽배를 탔어요. 나이든 사공은 평생 같은 자세로 힘든 노동을 해온 사람인데 얼굴이 정말 평온한 거예요. 가족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서 반복되는 일상과 노동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어요. 젊을 땐 그런 삶이 얼마나 갑갑할까 생각했는데, 이제 그 삶이 숭고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는 2015년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에게 남편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가 나를 믿어줬기에 세계 곳곳을 누빌 수 있었어요. 인도든 백두산이든 간다고 하면 정말 아무런 불평 없이 다녀오라고 말해준 고마운 사람이에요.”

이런 여행이 방학 있는 교사에게 주어지는 ‘혜택’임을 안다. “저는 교사에게 이런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사의 견문은 아이들에게 전달되니까요. 넓은 세계를 보고 와서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여행은 두 가지다. 구한말 러시아로 강제이주한 한인들의 흔적을 따라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는 것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나누는 여행’이다. “딸이 한 달간 시리아 난민센터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왔어요. 그 전에는 난민 기사가 나와도 남 얘기 같았는데 이제 계속 관심을 갖고 찾아보게 돼요. 앞으로는 내 여행이 남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꾸려가고 싶어요.”

이번에 낸 여행책이 어떻게 읽혔으면 좋을지 물었다. “책을 내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편지며 카톡을 보내와요. 그들이 말하길 여행뿐 아니라 일, 사랑 등 모든 일에 새롭게 도전하고 싶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여행은 모든 이의 꿈이지만 늘 현실의 벽에 부닥치죠. 그 벽을 치고 나갈, 마음속의 열정을 깨울 수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신귀영 기자 ky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