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때문에 망설였지만
- 마지막 불꽃 태울 각오

- 빼어난 도시 경관서 영감
- 문학·예술인 대거 배출
- 맥 이을 후학 양성 앞장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한국문학의 거장 박경리, 꽃의 시인 김춘수, 청마 유치환, 시조 시인 김상옥, 추상화의 대가 전혁림….

통영예총 신임 강기재 회장이 통영의 문학과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경남 통영이 배출한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의 거목들이다. 통영은 자연스레 예향(藝鄕)이라 불린다. 그런 통영 예술계를 이끌어갈 새 수장으로 강기재(73)회장이 선임됐다. 지난 6일 치러진 ‘제32대 통영예총 회장’ 선거에서 그는 단독 출마해 대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제 나이가 많아 좀 망설였어요. 하지만 나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열정 아닐까요. 남은 생의 마지막 불꽃을 통영 예술계를 위해 불태울 작정입니다.” 통영의 한 찻집에서 만난 강 회장의 첫인상은 깔끔한 외모에 눈빛이 무척 맑아 소년처럼 보였다. 그는 찻집 벽면에 붙은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나지막하게 읊었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시와 문학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너무나 행복한 표정을 지어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원숙미를 엿볼 수 있었다. 청년의 열정과 노인의 경륜이 동시에 느껴졌다. 강 회장은 통영예총 산하에 있는 7개 지부(무용 문인 미술 사진 연극 음악 연예)의 상호 협력과 단합을 강조했다.

“7개 지부 간 소통을 모토로 통영예총을 이끌어 나갈 방침입니다. 무엇보다 제각각 열리고 있는 예술제 행사를 통합해 국내 최고 수준의 예술제로 키워볼까 합니다.”

자신의 임기 4년 동안 통영예술제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제로 성장시키겠다는 야무진 각오를 내보였다. 강 회장은 인구 14만 명의 작은 도시인 통영에서 걸출한 예술인을 많이 배출할 수 있었던 원동력으로 뛰어난 자연경관과 부자 어촌의 영향을 꼽았다. 그는 자연경관이 워낙 빼어난 통영에 오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은 통영을 둘러보고는 ‘통영과 한산도 일대의 풍경과 자연미를 나는 문필로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극찬했잖아요. 그만큼 보는 곳곳이 비경이라 자연스레 시를 읊조릴 정도로 문학예술의 정서가 밑바탕에 깔려있는 거죠.”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부터 남해안 어업전진기지로 이용되면서 외국 선진문물을 빨리 받아들였고, 돈이 넘쳐나면서 통영민은 일본 유학 등을 통해 문학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았던 것이 예향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강 회장은 “기본 예술적 정서 위에 실력을 쌓다 보니 국내를 대표하는 문학 예술인을 대거 배출할 수 있었다”며 “통영 예술의 혼을 이어갈 후학 양성에도 앞장서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통영 한산도 출신인 강 회장은 공직 생활 중 우연히 수필 강의를 듣고 그 매력에 푹 빠졌다.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50대 중반에 ‘도다리 쑥국’이라는 수필집을 펴내 등단했다. 통영의 봄 바다 대표어종인 도다리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 쑥을 주제로 다뤘다. 늦깎이 문학도지만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통영문인협회 회장, 수향수필문학 회장, 물목문학 회장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한참 집필 활동에 전념할 때 예상치 못한 시련이 닥쳤다. 두 번의 암 수술을 해야 했지만 굳센 투병 생활로 당당히 이겨냈다. 그리고는 또 다른 분야에 도전했다. 70살에 시조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다.

강 회장은 “예향 통영의 위상에 맞는 통영예총이 될 수 있도록, 두 가지 암을 이겨 낸 투지로 마지막 남은 열정을 모두 불사르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박현철 기자 phcnew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