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 온난화로 생태계 변화
- 어자원 남획·오염 등으로
- 바다 환경 갈수록 황폐화
- 인간 탐욕에 ‘시어’로 경고

국립수산과학원에 재직 중인 해양연구 박사가 문명에 의해 파괴되는 해양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아 시집을 냈다. 서영상(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55) 시인이 최근 네 번째 시집 ‘고래불’을 출간했다.

서영상 시인이 자신의 네 번째 시집을 소개하며 “표지에 실린 로봇고래 삽화는 문명에 의해 파괴된 바다 생태계를 상징한다”고 설명했다.

2003년 문학세계로 등단한 서 시인은 2004년 시집 ‘바다에 빠트린 시’를 비롯해 ‘바다에서 건진 시’(2006년) 등을 발간했다. 지난 27일 부산 기장군 수과원에서 만난 서 시인은 “10여 년 전 1·2집을 통해 무수히 많은 시상을 바다에서 건지고, 또 그곳에 빠뜨렸다”며 “이번에는 학자로서의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시화했다”고 설명했다.

서 시인이 최초 시집을 낸 계기는 1988년 수과원에 입사한 뒤 알래스카에서 일본까지 횡단하는 북태평양어업자원 조사선을 탄 일이었다. “과거 연구자들은 물의 흐름을 조사하기 위해 유리병에 편지를 써서 바다에 빠뜨린 뒤에 주운 이에게 포상했죠. 파도에 뒤흔들리던 배가 잠잠한 어느 날 푸른 바다와 별을 보다가 유리병에 시를 담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2년 뒤 강원도 강릉의 연구소에서 ‘벌거벗은 채 바다를 떠다니는 언어를 낚아 인생과 사랑을 노래(2집 ‘바다에서 건진 시’의 서문)’한 서 시인은 한동안 시집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해운대문인협회 한국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회원으로서 틈틈이 계간지에 작품을 싣는 등 시작(詩作)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부산문화재단에서 지역특성화사업으로 출간비 200만 원을 지원하는 공모 대상자로 선정됐다. 서 시인은 “시작을 한 이후 30여 년간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남획으로 인한 바다 환경의 파괴와 기후변화, 온난화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번 시집에 토로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쓸쓸한 단상은 이번 4집 제목이자 타이틀 시인 ‘고래불’에 극명하게 드러나 있다. 고래불은 경북 영덕군 병곡면에 자리한 해수욕장이다. 고려 말 성리학자인 목원 이색이 고향인 영덕에서 관어대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다가 물을 내뿜는 고래를 목격하고 지은 구절이 시에 인용됐다. ‘상대산 관어대에 올라 목은이 고래를 보고 읊은 시는/큰돌고래 찬가였을까 낫돌고래 찬가였을까/고래들이 떼 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드네’.

하지만 오늘날 고래불에는 고래는 보이지 않고, ‘화답 없는 인간 고래만이 와글와글’할 뿐이다. 서 시인은 “비슷한 맥락으로 표지에 흑등고래의 그림을 넣었다. 자세히 보면 로봇고래다. 환경 파괴로 고래가 로봇으로 대체되는 시대를 그렸다”고 말했다.

시인의 위기의식은 5부에 수록된 ‘기후변화에 관한 보고서’에 더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얕은 바다로 회귀하던 눈치 빠른 물고기가 심해로 달아난다’. 서 시인은 “연안의 수온이 오르니까 물고기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더운물에 사는 물고기와 찬물에 사는 물고기가 한데 섞이는 괴현상이 일어난 걸 표현했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서 시인은 ‘파도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 천억 개의 푸른 별빛을 모으리’라는 시구를 통해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학자의 자세를 보여준다.

시집을 보면 군데군데 전공 서적에나 있음 직한 주석이 눈에 띈다. “해양 관련 시지만 오히려 더 이해하기 쉬운 시집이 됐으면 했다”는 설명에서 대중 학문을 다루는 학자의 면모가 엿보였다. 이성의 영역에서 감성의 영역으로 넘나들기를 해야 하는 학자 겸 시인의 고충이 궁금했다. 서 시인은 “현실에서 손에 잡히는 일을 하다가 추상 속에서 시를 낚는 게 어렵다. 주말 내내 시집을 쌓아놓고 읽다가 문득 시어가 밀려올 때 작품을 쓴다”고 답했다. 이어 그는 “해양에 대한 애착과 집념, 경험, 감정을 날카롭게 다듬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아 얻게 되는 세련된 시어로 시화하는 게 목표”라고 덧붙였다.

1986년 수산대(현 부경대)를 졸업한 그는 1988년 수과원에 연구사로 들어와 해양환경팀장, 해양연구과장, 어장정보과장, 수산해양종합정보과장직을 역임했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