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후 요정 등으로 쓰인
- 일제강점기 일본식 양옥
- 등록문화재로 문화재청 매입
- 작년 개축 뒤 시민에 개방
- 장·노년층 유년기 추억 자극
- 새 공간 찾는 젊은층도 매료
- 다양한 프로그램 구상 중

“어릴 적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봤던 ‘정란각’(‘문화공감 수정’의 옛 명칭)을 시민이 예술과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미경 관장은 “문화공감 수정 건물이 근대 주택 건축사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부산 동구 수정동 한적한 주택가에 있는 문화공감 수정 건물은 해방 후 요정(料亭), 일본인 상대 한식 요릿집 등으로 사용되다가 2007년 7월 등록문화재 제330호로 지정됐다. 3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지난해 6월 시민에 개방됐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문화재청에서 위탁받아 동구노인복지관과 함께 운영한다. 방문하면 누구나 복지관 소속 어르신 직원들이 직접 만든 유자차, 대추차, 매실차 등 차와 커피를 마시며 이색적인 공간을 즐길 수 있다.

이미경(56) 씨는 지난 6월 공모를 거쳐 관장에 선정됐다. 이 관장은 정란각과 어릴 적부터 인연이 있다. 아버지가 철도공무원으로 재직한 까닭에 어렸을 적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부산역과 가까운 동구 초량동에 살았다. 결혼 뒤 부산을 떠난 6년을 제외하면 인생 대부분을 문화공감 수정 가옥 근처에 살며 옛 정란각을 지켜봤다.

“밖에서 보면 너무 예쁜 집이잖아요. 어렸을 때는 그저 예쁜 언니들이 사는 부잣집인 줄로만 알았어요. 좀 큰 후에야 요정인 걸 알았죠. 늘 닫혀 있던 정란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곤 했어요. 그 안은 어떨지 무척 궁금했죠.”

이 관장 말처럼 문화공감 수정 건물은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한눈에 이목을 끈다. 1943년 일본인 재력가가 건립한 근대 일본식 양옥으로 넓은 대지(660㎡) 안에 맞배지붕을 올린 대문 3칸이 있고, 몸채 1동(204.79㎡)이 남쪽을 향해 있다. 1층 일부는 온돌방으로 개조됐지만, 2층은 전형적인 일본식 주택에서 볼 수 있는 복도와 다다미방이 원형대로 남아 있다. 고급 일본식 건물의 의장 요소를 갖추고, 2층은 일본식 전통 주택의 형식을 따라, 일제강점기 근대 주택 건축사와 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있다.

문화재청이 가옥을 매입하면서 굳게 닫혔던 대문이 열렸다. 이 관장은 리모델링 시기부터 동네를 오가며 옛 정란각을 지켜봤다. 그는 “서울에 사는 동안 규방공예와 전통자수를 배웠다. 서울에는 궁이 많다 보니 경복궁과 운현궁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란각 리모델링을 보면서 이곳을 전통 공예를 가르치는 문화센터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문화공감 수정은 이색적인 공간을 찾는 젊은 층과 어릴 적 추억을 더듬어 온 장·노년층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젊은 층은 영화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들이 좋아하는 배우와 가수의 흔적을 찾기 위해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 관장은 “가수 아이유가 ‘밤 편지’ 뮤직비디오를 이곳에서 찍고 난 뒤 젊은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이 관장처럼 어릴 적 봤던 옛 정란각의 내부가 궁금해 오는 방문객도 있다. “이곳과 가까운 부산고를 다니신 한 어르신이 방문한 적이 있어요. 친구분께 전화를 걸어 ‘야, 우리 성공하면 정란각에 가자고 했는데, 내가 성공했나 보다’하며 껄껄 웃으신 일화도 있죠. 제가 이곳 출신이다 보니 장·노년층 방문객과 이야기를 나누면 쉽게 공감대를 찾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관장은 이곳이 차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문화예술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희망하며 여러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수정문화콘서트를 개최해 문화예술을 공유하며 등록문화재를 시민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또 전통보자기, 전통자수 등 규방 공예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초청해 ‘동구 바로 알기’ 등 근현대사 강의를 진행할 계획도 있습니다. 이곳과 이바구길, 근대역사박물관, 임시수도청사 등을 엮어 청소년을 위한 근현대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박정민 기자 lin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