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건축은 터널과 같습니다. 까마득하죠. 프로젝트에 지치고 곤혹스러울 때 멈추지 않고 차근차근 나아가다보면 터널 끝의 빛이 제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그 빛이 희망이 되기도 하죠.”

	신진호 대한민국건축대전 대상 수상자는 “끊임없이 지도하고 격려해준 교수님과 학우들 덕분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김성효 기자

지난 8일 서울건축가협회에서 진행된 제36회 대한민국건축대전 국제일반 공모전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신진호(26) 씨는 이런 말과 함께 “늘 성실하게 노력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며 인터뷰에 응하는 그의 모습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집을 지을 미래 건축가의 풍모가 느껴졌다.

신 씨는 동명대 건축학과 5학년에 재학 중인 건축학도다. 부산에서 대한민국건축대전 대상 수상자가 나온 것은 20년 만에 처음이다. 대한민국건축대전은 한국건축가협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건축 대회다. 과거 미술 분야와 함께 대회를 치렀으나 지금은 건축 분야만 별도로 진행돼 일반 건축가와 대학 학부생 대학원생이 참가한다. 보통 이 대회의 대상은 서울지역 상위권 대학 재학생이나 출신들이 독식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부산지역 대학 재학생인 김 씨의 수상은 여타 대회 수상과 의미가 다르다.

신 씨는 “건축학도라면 누구나 대한민국건축대전에 도전해 상을 받는 걸 꿈꾼다. 국내 최대의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윤종국 조승구 지도교수님의 지도와 조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공을 스승들에게 돌렸다.

대한민국 건축대전은 매회 공모 주제를 참가자들에게 제시한다. 올해 대회의 주제는 ‘모듈(module)’. 모듈러(modular) 건축은 이동·해체·조립과 재활용·규격화·표준화가 가능해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공장제(모듈) 건축을 의미한다. 조립식·컨테이너 집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대회 조건에 맞춰 신 씨는 ‘모듈러 커뮤니티 인 어 데일리 라이프 플랫폼(modular community in a daily life platform)’이라는 작품을 제출했다. 근대 산업화 시기에 만들어진 상가아파트가 오늘날 커뮤니티를 중시하는 도시의 삶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 주목, 1974년 지어져 현재 철거 위기에 놓인 부산 동구 초량동의 상가아파트를 재생하는 안을 내놓고 두 차례 발표를 거쳤다.

“전통시장 앞 거대한 상가아파트 건물이 벽화같아 보였어요. 상가아파트는 전통시장과 가까워 여러 가지 일과 소통이 일어나는 장소지만 주거 기능만 강조되다 보니 공동체 공간의 역할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주변 시장과 연계된 창의적인 커뮤니티를 제안함으로써 도시 공동체의 회복을 꾀하고 싶었습니다.” 이에 신 씨는 자유로운 모듈 배치 기법을 활용해 아파트의 주거 기능은 살리면서 아파트 주민과 상가 상인, 시장 상인·고객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도시 공간을 제안했다. 그 결과 기존과 달리 재개발로 원주민이 쫓겨나지 않고 건물 밖 사람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독창적인 공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회가 정한 모듈 규격에 맞춰서 작품을 구상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한정된 공간에 주민 이벤트 장소, 경로당, 공부방, 상인협의회 장소, 외부인 이용 카페, 전시관 등을 모두 구상해 담아내야 했다. 6개월간 교수님과 학우들이 모여 치열하게 매주 2차례 문제점을 지적하는 평가회를 겪으며 오류를 수정했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당시 신 씨를 비롯해 건축학과 내 5학년 학생 25명이 공모를 준비, 치열한 품평 과정을 거쳐 최종 15명만 작품을 대회에 제출했다는 후문이다.

신 씨의 큰 대회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부산국제건축디자인워크숍에 참가해 불가리아 중국 학생들과 공동으로 ‘동천 살리기 프로젝트’를 제안해 참가자 중 1등을 차지했다. 그는 “동천을 살린 뒤 그 위에 시민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놀이시설이나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자는 아이디어였다”며 “다른 나라 학생들과 의견을 조율하며 일을 추진한 값진 경험이었다. 단기간에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한 경험이 이번 건축대전 수상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건축학도가 모두 원하는 대상 수상자의 소망은 예상보다 소박했다. “일단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을 잘 정리해서 제 건축 철학에 맞는 사무소에 입사하는 게 목표예요. 귀한 돈을 들여 제게 설계를 부탁한 의뢰인에게 가족의 행복이 끊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건축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