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고위험군 판정 받은 사례관리 홀몸노인 30명, 매주 화요일 춤추며 사교
- 인형 만들기 등 두뇌 활동도 우울증·관계 개선 효과 나
- 예산 탓 짧은 운영은 아쉬워

100세 시대를 맞아 최근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노년층의 활동이 다양하다. 민간 레크리에이션 업체에서는 노래 강좌를 겸한 청춘학교를 운영하는가 하면, 대학 등 교육기관에서는 평생학습의 하나로 만학을 돕기도 한다. 또 일부 경로당은 시설 이용 노인의 선호에 따라 강사를 초빙해 다양한 배울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과거 ‘뒷방 늙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사회적 인프라도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상의 문제 등 다양한 이유로 취약계층 노인에게는 노후 활동이라는 것 자체가 엄두도 못낼 사치이기 때문이다.

부산 수영구 망미1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억학교’ 학생들이 강사의 라인댄스 동작을 따라 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부산의 한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기억학교’를 설립해 기초수급 홀몸노인에게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지난 8일 부산 수영구 망미1동 행정복지센터 3층 대강당.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의 나이가 있나요~. 마음은 하나요 느낌도 하나요~.” 노래교실을 방불케하는 유행가 가락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30명가량의 60·70대 남녀가 어색한 손·발짓을 하며 중년 여성 강사의 라인댄스를 따라했다. 라인댄스는 여러 사람이 줄 지어 추는 춤이다. 발을 구르며 하체와 상체를 함께 움직이는 단순 동작을 통해 치매 등 예방 효과가 있는 춤으로 알려져 있다.

“쭉쭉 뻗으세요. 그대로 따라 못하셔도 돼요. 혈액 순환이 잘되게 팔 다리 모두 크게 움직이세요.” 이날 12회째 진행된 기억학교의 라인댄스 수업을 맡은 강미자 강사는 “어르신들이 춤을 완벽하게 숙지하게 하자는 게 아니다”며 “흥겨운 활동을 통해 기분전환의 기회를 드리는 게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기억학교는 우울·건망증 등이 심각해 치매 고위험군에 속한 지역 홀몸노인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치매예방 학습 프로그램이다. 앞서 구 보건소에서 망미1동 사례관리 홀몸노인 100명을 대상으로 치매 선별 검사를 거쳐 고위험군 노인 30명을 선정했다. 이들의 건강 악화를 막기 위해 지난 5월부터 화요일마다 4회에 걸쳐 행정복지센터에서 부엉이 인형, 도어벨, 방향제, 화분, 비누 만들기 등의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현재는 좀 더 역동적인 활동을 원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1시간가량 라인댄스 교육이 진행된다. 이후 나머지 1시간은 수다 등을 떠는 친목 도모의 시간. 이를 위해 망미1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 5명이 학생들과 춤과 대화를 함께하며 도우미 역할을 한다.

센터 김미희 복지사무장은 “수급을 받는 홀몸노인은 노인정에 가도 텃세에 눌려 적응이 쉽지 않다. 유료 청춘학교같은 데를 가려 해도 비용부담이 있다”며 “그렇다 보니 생활고에 노년의 쓸쓸함이 더해 병을 키우고 종국에는 고독사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악순환을 막기 위해 고위험군 홀몸노인의 치매 예방과 관계 형성을 돕는 기억학교를 운영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한 70대 학생은 집안 내 수돗물과 도시가스도 쓰지 못하게 하는 자린고비 남편에게 억눌려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또래들과 수업을 들으며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또 다른 80대 학생은 무직인 20대 손자의 과격한 행동과 수급비 강탈 등의 학대에 시달리다가 수업을 통해 알게 된 협의체 위원의 도움으로 손자와 좋은 관계를 회복했다.

1회 수업부터 개근 중인 박행자(여·78) 씨는 “손이 떨려서 만들기나 춤을 제대로 따라하기가 쉽지 않은데, 20살 아래 협의체 위원이 챙겨준다”면서 “어느 날 마음이 너무 힘들었는데, 수업에 오니까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기억학교는 다음 달까지만 운영할 예정이다. 인건비 재료비 등 명목으로 한 달에 30만~100만 원까지 드는 예산을 동에서 충당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배진표 망미1동장은 “어르신들의 치매 예방과 사회적 관계 회복이라는 소기의 목적이 달성된 만큼 이를 유지하는 게 중요해졌다. 재능기부 등을 통해 올해 말까지 학교를 이어가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