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세에 이민, 대학까지 마쳐
- 한국어 능통 식성도 한국식
- 국무부 손꼽히는 동아시아통
- "꾸준한 교류로 '반미' 극복"
- 도시철도 출퇴근 이색행보

1970~80년대 국내 대학가에선 '반미'라는 구호가 끊이질 않았다. 이후 군사정권의 몰락, 문민정부의 등장으로 세상이 참 많이 변했다. 무엇보다 세기가 바뀌었다. 그러면서 시나브로 '반미'라는 단어가 거의 자취를 감췄다. 부임 3개월째인 김대범(52) 주부산미국영사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1974년 부모를 따라 13세 때 도미한 그는 그곳에서 대학(원)까지 마쳤다. 교사 출신 부친의 교육 철학 덕분에 한국말과 김치를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중·고교 땐 교민이 운영하는 반정부 신문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미국 땅을 딛고 있었지만 사고는 국내 여느 또래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기에 일어 러시아어까지 능통해 미 국무부의 몇 안 되는 동아시아통이다. 부산 근무는 처음이지만 한국 발령은 이번이 세 번째다.

이쯤 되면 그의 견해를 들어봐도 되지 않겠는가. 뜻밖의 질문에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의 표정을 지으며 나름의 생각을 이렇게 정리했다.

"미국은 다양한 얼굴과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어요. 당시 대학생들은 미국 사회의 이런 속살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이후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로 여행뿐 아니라 유학 및 이민자 수가 늘고, 이들이 차츰 미국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생각이 변화한 것 같아요. 당시 주도적으로 '반미'를 외친 '386세대'가 미국으로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는 주 계층이 된 것이 하나의 본보기가 될 거 같은 데요. 여기에 미 정부가 국제교환방문자 프로그램이나 유명 인사 초청 강좌, 문화교류 등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운영해온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겠지요."

외무고시 합격 후 주한미대사관으로 첫 발령을 받자 그의 부친이 특히 기뻐했다. "이민 온 보람이 있다"며 기뻐하시던 부친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원래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8년간 세일즈 매니저를 했지만 무려 6번이나 회사를 옮겨 부친이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전직은 운명이라고 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때 늘 마음 한 쪽이 텅 비어 있었다. 신문을 봐도 늘 국제뉴스에 눈길이 갔다. 30대 중반의 가장이라 가감히 사표도 던질 수 없어 택한 것이 주경야독이었다.

주부산미영사관의 담당 행정구역은 부산을 비롯 대구 울산 경상남·북도 및 제주도. 그는 "주로 젊은 층을 대상으로 강연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미국을 전달해 미국을 보다 가까이 느끼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부산 울산 경남 제주 등의 고교 및 대학에 벌써 10여 차례나 강연을 다녀왔다. '외교관의 관점에서 본 문화 간 의사소통'이라는 제목으로, 국제무대에서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선 진취적인 자세로 국가 간 문화적 차이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문화공연도 빼놓을 수 없는 접근 방법이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은 부산시민도서관 내 아메리칸코너에서 음악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공연으로 부산의 젊은이와 소통할 계획이다.

그는 매일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부산시민의 성향과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유롭게 느끼기 위해서다. 열차나 역사 내 붙은 포스터로 인한 문화공연 관람은 덤이라 했다.

전문 외교관으로 향후 계획 내지 포부를 물었더니 깜짝 놀랄 답변이 돌아왔다. 한때 제2의 성 김 대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2010년 4월 5일 이후 그런 꿈을 접었단다. 파키스탄 근무 시절 탈레반의 차량폭탄 테러로 동료 8명을 허망하게 잃은 후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단지 운이 좋아 살아 남은 그는 이후론 '보너스 삶'이라고 여기고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