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주 가에는 좋은 풀이 푸르고(鸚鵡洲邊芳草靑·맹무주변방초청) / 등왕각 위에는 노을이 밝구나(滕王閣上落霞明·등왕각상락하명) / 그 가운데 당시의 흥취가 남아 있어(箇中亦有當時興·개중역유당시흥) / 바람 앞에 술잔 드니 속세 떠난 정이라네(擧酒臨風物外情·거주임풍물외정)// 산과 바다 임한 누각 몇 번 봄을 보냈는가(樓臨山海幾經春·누임산해기경춘) / 낭간에 자리 펴도 먼지조차 일지 않네(簟布琅玕不惹塵)·점포랑간불야진) / 기둥에 홀로 기대 오래도록 바라보니(獨倚前楹遊目久·독기전영유목구) / 맑은 바람 희미한 달이 사람을 잡는 듯하네(淸風淡月似留人·청풍담월사류인)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살았던 시인인 이원(李原·1368~1429)의 시 ‘연자루 시에 차운한 2수(次燕子樓詩 二首)’로, 그의 문집인 ‘용헌집(容軒集)’에 수록돼 있다. 연자루는 경남 김해의 호계(虎溪) 가에 있었던 누대이다. 제1수는 원 작자와 제목을 알 수 없으나, 제2수는 고려 시대 문신인 주열(朱悅) 등의 시에 차운한 것이다. 주열의 원운시(原韻詩)를 함께 보자.

“연자루 없어진 지 몇 년인지 물어보니(燕子樓亡問幾春·연자루망문기춘) / 푸른 비단 휘장과 구슬 발은 이미 티끌 되었네.(碧紗珠玉已成塵·벽사주옥이성진) / 목메어 울며 흐르는 호계 물은 언제 다할까?(虎溪鳴咽何時盡·호계명인하시진)/ 구름 흩어지듯 천 년 세월 사람 볼 수 없네(雲散千年不見人·운산천년불견인)”

이원은 주열의 시구 가운데 첫 구의 ‘춘(春)’, 둘째 구의 ‘진(塵)’, 넷째 구의 ‘인(人)’ 자를 차운했다. 당나라 때의 시인 최호가 지은 ‘등황학루(登黃鶴樓)’라는 잘 알려진 시에 “맑은 냇물에 한양의 나무가 뚜렷하고, 봄풀은 앵무주에 무성하네.(晴川歷歷漢陽樹·청천력력한양수 春草萋萋鸚鵡洲·춘초처처앵무주)”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원의 시에서 ‘앵무주’는 연자루 앞의 강물에 있는 아름다운 모래톱을 말한다. ‘등왕각’을 끌어온 이유는 연자루가 그만큼 아름답다는 것이다. 연자루에 앉아 호계 계곡과 저 멀리 낙동강의 삼차수와 칠점산을 감상하며 더위를 식혔으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물론 지금은 연자루와 칠점산은 없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