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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32> 한 해를 보내며 읊은 시

한 해를 보내지 않으려는 그 마음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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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20-12-27 20:02:27
  •  |  본지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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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해는 이제 어디로 가는가 / 이쯤에서 새해를 기약해야겠구나. / 흘러가는 세월 나와 무관하다 하지만 / 귀밑머리로 돌아오니 가장 밉구나.

舊歲今從何處去(구세금종하처거) / 新年似向此中期(신년사향차중기) / 流光衰衰非關我(유광쇠쇠비관아) / 最是生憎入鬢髭(최시생증입빈자)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鵝溪) 이산해(1539~1609)의 ‘한 해를 지키면서(守歲)’이다. 그의 문집 ‘아계유고(鵝溪遺稿)’권4에 있다. 한 해를 보내며 아쉬워하는 건 영의정도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쥐띠의 해가 저물고 있다. 필자와 같은 장삼이사들은 날마다 여러 일을 겪는다. 하루하루, 그리고 일 년을 살아낸다는 게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좋은 일보다 걱정거리가 더 많은 게 티끌세상의 삶이다. 한 해 동안 해놓은 것은 없고, 세월만 흘러 나잇살만 먹어간다. 섣달그믐을 제석(除夕) 또는 제야(除夜)라 한다. 제(除)는 바뀐다는 뜻이다. 한 해 마지막 날을 보내지 않으려고 잠을 안 자고 밤을 지켰다. 이를 수세(守歲)라 한다. 이산해도 해가 바뀌면 귀밑머리가 더욱 셀 것을 생각하니 밤을 잡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어릴 때야 해가 바뀌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생각으로 즐거웠지만, 나이 들수록 오히려 슬픈 마음이 든다. 성호 이익의 제자 윤기(1741∼1826)는 한 해를 보내며 “사랑하는 임과 헤어지는 듯/ 흘러가는 여울물을 바라보는 듯(似送情人別 / 如觀逝水湍)”이라며 슬퍼하였다. 이렇듯 대개 섣달그믐은 슬픈 날로 여겨진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새 각오를 다지거나 심기일전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우의정을 지낸 장유(1587~1638)는 일신(日新) 우일신(又日新)으로 덕업(德業)을 새롭게 하면 나이 들어가는 것이 슬프지 않다고 하지 않았던가?

필자 젊은 시절엔 연말이면 친구들과 시내를 쏘다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더 어릴 적 이맘땐 샛강에서 얼음 지치느라 정신없었다. 세월이 쏜살같아 거의 백발이 된 지금 지리산 화개골로 들어와 은거하고 있다. 눈만 뜨면 마주치는 게 산이고, 계곡이다. 이 깊은 산골에서 한 해를 보내니 온갖 회한이 다 든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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