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울 난(乙-12)가운데 중(丨-3)날일(日-0)쓸기(言-3)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한다. 참으로 그렇다. 난세라야 영웅이 영웅다운 기개와 면모를 보여줄 수 있으니, 그렇다. 동시에 간흉도 드러난다. 난세야말로 잇속을 챙기기에 더없이 좋은 시절이므로 그렇다. 어쨌든 어느 나라의 역사에나 난세의 영웅이 하나쯤 있다. 우리나라에는 꽤 많은 영웅이 나타났고, 그 가운데서도 李舜臣(이순신)은 으뜸으로 꼽힌다. 그런데 영웅이라면 무언가 남다른 언행을 했으리라 여겨지는데, 과연 그러한지 그의 ‘亂中日記(난중일기)’를 잠깐 엿보자.

“갑오년(1594) 4월 23일. 맑음. 아침에 순천 부사와 흥양 현감이 왔다. 곤양 군수 이광악이 술을 가지고 왔다. 장흥 부사도 왔다. 임치 첨사도 함께 왔다. 곤양 군수가 몹시 취해서 미친 소리를 마구 해 대니 우습다. 나도 잠시 취했다.” 아니, 戰時(전시)에? 언제 어떻게 적을 맞닥뜨릴지 모르는 판국에 술이라니! 요즘 같으면 언론에서 ‘단독’이라며 비난을 퍼붓는 기사를 쏟아냈을 것이다. ‘난중일기’에는 술을 마셨다는 기록이 꽤 많이 나온다.

“갑오년 6월 11일. 맑음. 더위가 쇠라도 녹일 것 같다. 아침에 아들 울이 본영으로 가는데 이별하는 심회가 그윽하다. 홀로 빈집에 앉았으니 심정을 스스로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사사로운 소회가 절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과연 장수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그런데 갑오년 11월 12일에는 “견내량에서 경계선을 넘어 고기잡이를 한 사람 스물네 명에게 곤장을 쳤다”는 대목이 나온다. 먹고 살겠다며 위험을 무릅쓴 고기잡이들에게도 곤장을 쳤다. 이게 백성을 가벼이 여겨서가 아님은 다들 짐작할 것이다. 이렇게 ‘난중일기’에는 위대한 장수 이순신의 갖가지 모습들, 섬세함과 따스함, 흐트러짐과 엄정함, 울분과 고심 등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變德(변덕)스러워 보일 정도다. 그러나 그 참된 바탕은 바뀐 적이 없다. “一揮掃蕩, 血染山河. 三尺誓天, 山河動色.”(일휘소탕, 혈염산하. 삼척서천, 산하동색)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자 피가 산과 강을 물들였네.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강이 떠는도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