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풀 혜(心-8)묵을 숙(宀-8)같아질 동(口-3)티끌 진(土-11)

고려시대 一然(일연, 1206∼1289) 스님이 저술한 ‘三國遺事(삼국유사)’에 ‘二惠同塵(이혜동진)’이라는 항목이 나온다.

‘이혜동진’이라는 제목은 惠宿(혜숙)과 惠空(혜공) 두 스님이 티끌과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노자가 말한 ‘화광동진’에서 제목을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혜숙 스님의 이야기 한 토막을 늘어놓으면 이러하다.

혜숙 스님은 花郞(화랑)들과 어울려 지내다가 문득 赤善村(적선촌)에 숨어 20여 년을 살았다. 어느 날, 國仙(국선, 화랑의 지도자) 瞿旵公(구참공)이 사냥에 나서려 하고 있었다. 혜숙이 길가에 나와 그의 말고삐를 잡고서 부탁했다. “소승도 따라가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구참공이 함께 가도 좋다고 허락하자 혜숙은 이리저리 내달리며 앞서느라 옷이 벗겨질 지경이었다. 그러자 구참공도 매우 기뻐했다. 사냥이 끝난 뒤, 그들은 앉아서 쉬며 고기를 삶고 구워서 먹었다. 혜숙도 같이 먹으면서 조금도 꺼리는 기색이 없었다. 이윽고 혜숙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맛있는 고기가 있는데, 좀 더 드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구참공이 말했다. “좋다!”

그러자 혜숙이 사람들을 물리치고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쟁반에 담아 올리는데, 그 옷에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구참공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째서 이렇게 하는가?”

혜숙이 말했다. “처음에 저는 공이 어진 사람이어서 자신의 경우를 미루어 만물에까지 통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따라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공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살육을 즐기고 남을 해쳐 자신을 기를 뿐이군요. 이 어찌 어진 사람이나 군자가 할 일이겠습니까? 공은 우리와 같은 무리가 아닙니다.”

마침내 혜숙은 옷을 툭툭 털고 가버렸다. 구참공은 몹시 부끄러워하며 혜숙이 먹던 것을 보았는데, 쟁반에는 혜숙이 먹은 줄 알았던 고기가 신선하게 그대로 있었다. 흔히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계율을 지키지 않는 승려를 땡중이라 하는데, 혜숙도 땡중인가?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