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八-6) 낌새 기(幺-9) 쉬울 이(日-4) 흩어질 산(攴-8)

1960년 4월, 학생들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민주적 절차에 따른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른바 4월혁명이다. 그리고 1987년 6월, 반독재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위가 전국에서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이를 6월민주항쟁이라 한다. 그로부터 다시 30여 년이 지나서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왜 혁명이 거듭해서 일어나야 했을까? 革命(혁명)은 말 그대로 천명을 바꾸는 것이니, 온 세상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변혁이다. 이런 혁명은 조짐이 나타나기 전에 낌새를 채고서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갉아먹고 국가의 토대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모순과 부조리,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나 인민이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때 일으킨다. 그렇다면 이런 혁명적 상황을 경험한 사회는 그만큼 진보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세대마다 거대한 운동이나 혁명이 되풀이해서 일어난 것일까? 이는 근본적인 변화, 의식의 진보가 일어나지 못했다는 의미다.

한국의 경제는 급성장해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권이다. 桑田碧海(상전벽해)라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직설로 다가올 만큼 온 국토도 급변했다. 생활 수준이나 생활방식에서 일어난 변화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분명히 물질적 생활이나 환경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수준으로 변화하고 발전했는데, 왜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혁명이 거듭 필요했을까? 간단히 말하면, 민주주의에서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는 개인들의 의식과 사고방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자는 “其幾也, 易散也”(기기야, 이산야) 곧 “낌새가 있을 때 흩어지기 쉽다”고 말했다. 여기서 낌새란 미세한 움직임을 뜻한다. 혁명이라는 사건은 겉보기와 달리 거대한 변혁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이자 첫 삽질일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혁명이 일어난 것으로 마치 변혁이 완성되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처럼 여긴다. 그런 착각은 도리어 사람들을 부지불식간에 낡은 관습과 그릇된 통념으로 되돌아가게 만들고, 혁명의 기운도 가뭇없이 흩어져버린다. 그리고 退行(퇴행)!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