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 도(阜-8)불릴 야(冫-2)말 이을 이(而-0)변할 변(言-16)바꿀 화(匕-2)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청 왕조는 처음에 조선을 침략하여 그 왕에게 치욕스런 三拜九叩頭(삼배구고두)를 강요하더니 나중에는 영국의 사절단에 三跪九叩頭(삼궤구고두)의 예를 행하라고 요구했다. 앞서의 예는 小中華(소중화)를 자처하던 조선의 왕과 사대부들에게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준 것이었다면, 뒤의 예는 中華(중화) 의식에 깊이 물든 청 왕조가 서양을 오랑캐로 얕본 것인데, 후자에서는 정축년의 조선처럼 꽉 막힌 인식이 완연하다.

어쨌든 조선은 청 왕조보다 먼저 오랑캐의 침략을 받고 萬世(만세) 뒤에도 잊지 못할 치욕을 겪었음에도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 치욕을 갚는 길이 무엇인지 전혀 각성하지 못했다. 도리어 사대부들 사이에서는 反淸崇明(반청숭명)의 풍조가 일어났고 중화 문화의 유일한 계승자라는 자부심이 더 커졌다. 이를 주자성리학이 사상적으로 뒷받침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사대부들의 사유와 인식은 점점 더 현실과 괴리되었다.

청 제국이 명 왕조처럼 해금 정책을 펴긴 했어도 강희제와 옹정제, 건륭제의 치세를 거치면서 광대하게 영토를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흥성했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이를 목도하지 않은 것도 아니건만, 소중화 의식과 시대착오적 인식에 갇혀 있었으므로 올바로 보지도 못했다.

물론 이런 청나라의 흥성한 문물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부국강병과 이용후생에 힘쓰자고 주장한 북학파 학자들도 있었으나, 그들이 대세가 되기에는 성리학적 사유가 너무도 견고하고 공고했다.

‘문자’ ‘微明(미명)’에서 말했다. “道者, 無達其意, 天地之間, 可以陶冶而變化也.”(도자, 무달기의, 천지지간, 가이도야이변화야) “도는 그 뜻을 다 풀어낼 수는 없으나 천지 사이의 만물을 만들고 불리며 변화시킬 수 있다.” 명나라를 멸망시킨 만주족이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다가 몰락한 일이나, 조선이 전란을 거쳤음에도 변화를 거부했다가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일 모두 도의 풀무질이다. 정체된 생각, 옹색한 사유로는 스스로 풀무질하지 못하고 도의 풀무질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