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女-5)마를 제(刀-6)있을 유(月-2)이름 명(口-3)

이제 ‘죽간본’ 10-2다. “始制有名. 名亦旣有, 夫亦將知之, 知之所以不殆. 譬道之在天下也, 猶小谷之與江海.”(시제유명.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소이불태. 비도지재천하야, 유소곡지여강해) “처음 마름질하니 이름이 있게 되었다. 이름이 있고 난 뒤에는 또한 그것을 알아야 하나니, 그것을 알게 되면 위태롭지 않다. 도가 천하에 있음을 비유하면 마치 작은 골짜기가 흘러드는 강과 바다 같다.”

制(제)는 마르다, 마름질하다는 뜻으로, 옷감이나 재목을 치수에 맞게 베고 자르는 것을 이른다. 제는 본디 나무의 가지와 잎을 나타내는 未(미)와 칼을 뜻하는 刀(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글자로서, 나무에 무성한 가지와 잎을 쳐내는 것을 나타낸다. 자연에 인간의 행위가 가해진 것을 가리키는 셈인데, 한마디로 有爲(유위)다. 유위의 대상이 무엇이냐 하면 당연히 노자가 통나무인 樸(박)에 비유했던 道(도), 그 도를 머금은 모든 존재다.

自然(자연)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본래 이름이 없다. 사람이 임의로 ‘하늘’이니 ‘땅’이니 ‘나무’니 ‘바위’니 ‘산’이니 ‘강’이니 하고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일 뿐이다. 김춘수 시인이 ‘꽃’을 두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고 노래했을 때, ‘이름을 부르는 행위’가 곧 노자가 말한 마름질이다. 지극히 인간적이고 인위적인 마름질이다.

그런 마름질을 하기 전에는 꽃은 그 자체로 존재했을 따름이다. 이를 시인은 ‘하나의 몸짓’이라고 했는데, 이 표현에는 존재보다는 언어에 무게를 두는 언어 중심적 사고가 배어 있다.

시인이 시의 끝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고 표현한 것처럼 인간은 이름이 없는 것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긴다. 물론 이름은 의미를 담는 그릇이니, 당연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름 자체가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행위로 붙인 것이므로 그 의미 또한 그 존재 자체의 본래적인 의미, 도로서 의미, 자연으로서 의미가 아니다.

문제는 인간이 이런 이름의 의미를 그 어떤 의미보다 중시하며 여기에 매여 있다는 사실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