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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천구의 도덕경…민주주의의 길 <208> 志弱而事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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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09-06 19:3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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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 지(心-3)여릴 약(弓-7)말 이을 이(而-0)일 사(-7)굳셀 강(弓-9)

흔히 공자를 교육자나 사상가로 알지만, 그는 뼛속 깊이 정치가였다. 그가 젊었을 때와 늙었을 때, 천하를 周遊(주유)했던 까닭도 자신을 알아주고 기회를 줄 군주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가 잠시 기회를 얻은 때도 있었다.

공자는 5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中都(중도)의 수령을 맡았고, 이어 司空(사공)이 되었으며, 다시 大司寇(대사구)가 되었다. 대사구는 형벌과 규찰 따위의 일을 맡은 관직인데, 후대의 刑部尙書(형부상서)에 해당한다.

공자가 이 직책을 맡은 뒤에 노나라의 정치와 풍토가 아주 새로워졌고, 이 소문을 들은 제나라에서는 노나라가 공자의 정치로 말미암아 패권을 잡을 것을 우려해서 노나라 군주와 대부들이 공자를 멀리하도록 계략을 꾸몄다. 노나라가 쇄신되기는 했겠으나, 참으로 패권을 잡을 만큼 성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과대평가한 면이 다분하다.

어쨌든 제나라의 술책이 통해서 노나라 군주가 정치에 무관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를 느낀 공자는 더 이상 관직을 맡고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노나라를 떠났다.

그의 나이 55세. 이때부터 14년 동안 수십 명의 제자들을 이끌고 각 제후국을 떠돌다가 다시 노나라에 돌아와 마지막으로 후학을 가르쳤다.
머물 만해서 머물다가 떠날 만하면 떠나고 나아갈 만해서 나아갔다가도 물러날 만하면 물러나는 것, 이것이 공자의 예의였고 행동 방식이었다. 이를 ‘때맞게 행동하는’ 時中(시중)이라 하는데, 시중은 노자가 말한 도의 속성이기도 하다.

‘문자’ ‘도원’에서 말했다. “夫德道者, 志弱而事强, 心虛而應當. 志弱者, 柔毳安靜, 藏于不取, 行于不能, 澹然無爲, 動不失時.”(부덕도자, 지약이사강, 심허이응당. 지약자, 유취안정, 장우불취, 행우불능, 담연무위, 동불실시) “무릇 도를 터득한 이는 뜻이 여리지만 일은 굳세게 하며, 마음은 비웠으나 상황에 따라 행동한다. 뜻이 여린 자는 부드럽고 누긋하며 편안하고 고요하니, ‘빼앗지 않음’에 몸을 감추고 ‘잘하지 않음’에서 드러내며 조용히 무위하다가도 한 번 움직이면 때를 잃지 않는다.”

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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