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없을 무(火-8)맛 미(口-5)의 지(丿-3)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도시화로 한국인들은 많은 것을 얻었으면서 동시에 많은 것을 잃었다. 잃은 것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나는 할머니와 어머니의 손맛 그리고 밥맛이라 하겠다.

손맛은 조미료로 말미암아 잃어갔고, 밥맛은 정크 푸드로 말미암아 멀어져갔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서 인구 비율로 따져 가장 많은 음식점이 있으면서 참으로 먹을 만한 음식을 하는 음식점, 이른바 ‘맛집’은 가장 적은 나라다.

방송마다 앞다투어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올리는 것은 외식이 일상사가 되었다는 뜻이면서 역설적으로 맛집은 적다는 뜻이다. 거의 모든 음식점이 맛집이라면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어떤 음식점을 맛집이라 하는 것도 사실은 우스운 일이다. 당연히 음식점이라면 맛이 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맛도 없는 음식을 만들면서 어떻게 음식점을 할 생각을 했을까? 음식점 주인의 무지나 교만, 착각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먹는 사람이 맛을 잘 알지 못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판소리에 ‘귀명창’이라는 말이 있다. 판소리를 할 줄은 모르지만 듣고 이해하고 감상하는 수준이 탁월한 사람을 이른다. 모든 예술이 다 그러하듯이 감상할 줄 아는 이가 있어야 창작의 수준이 높아진다. 귀명창이 있으면 소리꾼도 명창이 된다. 그래서 “귀명창이 소리명창을 낳는다”거나 “귀명창 있는 곳에 명창 있다”는 말들을 한다.

판소리에서 명창이 있으려면 귀명창이 있어야 하듯이 맛집이 많아지려면 맛을 아는 이들이 많아야 한다. 그 많은 음식점들 가운데 제대로 맛을 낼 줄 아는 집, 맛있는 집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맛을 아는 이가 적다는 뜻이다.

요즘 유행하는 美食家(미식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미식가는 좋은 음식을 찾아 먹는 사람이기는 해도 반드시 맛을 잘 아는 사람이라 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味食家(미식가) 또는 知味家(지미가)라야 참맛을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참맛이란 무엇인가? 無味之味(무미지미)다. 우리 음식에서 밥과 숭늉의 맛이 그런 맛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