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쇠 규(見-4)곱자 구(矢-5) 아닐 불(一-3) 맞을 중(丨-3)

최근 청와대에 시민들의 갖가지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보면, 마치 노자가 말한 ‘化而欲作(화이욕작)’ 곧 “달라지자 욕심이 일어난” 듯해서 적이 걱정된다. 사사로운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이치에 맞지도 않는 청원도 적지 않은 듯한데, 그런 청원은 자유라기보다는 방종에 가깝다. 노자도 이런 방종을 걱정해서 “무명의 통나무로 눌러야 한다”고 했다. 도대체 무명의 통나무가 무엇이기에 그런 방종을 누를 수 있단 말인가?

‘亡名之樸(무명지박)’ 곧 ‘무명의 통나무’에서 무명과 통나무는 거의 동의어다. 통나무는 전혀 작위가 가해지지 않은, 말하자면 가공되지 않은 상태의 나무다. 앞으로 어떤 꼴을 하게 될지, 어떻게 쓰일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 있는 것, 본래 생겨난 그대로의 것, 나아가 자연 그대로의 것을 가리킨다.

‘문자’의 ‘自然(자연)’에서는 “樸, 至大者, 無形狀”(박, 지대자, 무형상) 곧 “통나무는 지극히 큰 것이어서 형상이 없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크다는 말은 물리적인 크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꼴을 가질지 알 수 없고 그 쓰임새도 무한히 다양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렇다 해서 단순히 원초적인 어떤 것을 가리키지 않는다. 통나무는 하나의 비유일 따름이다. 그래서 ‘문자’에서도 위의 구절에 이어 이렇게 말했다. “道, 至大者, 無度量. 故天圓不中規, 地方不中矩.”(도, 지대자, 무도량. 고천원불중규, 지방불중구) “도는 지극히 큰 것이어서 잴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둥글기는 그림쇠로도 잴 수 없고, 땅의 네모나기는 곱자로도 잴 수가 없다.”

통나무도 지극히 크고 도 또한 지극히 크다. 통나무는 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쓰인 비유임이 분명하다. 해석하자면, 통나무는 그림쇠나 곱자처럼 인위적인 잣대로는 가늠할 수 없는 정치, 無名(무명)과 無欲(무욕)의 정치를 이른다고 할 수 있다.

욕심을 다 들어주고 다 채워주려는 정치가 아니라 만족을 알도록 해주는 정치, 그것이 통나무 정치다. 물론 이런 정치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정치를 해야 민주주의가 자란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