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 천(大-1)땅 지(土-3)가믈 현(玄-0)누를 황(黃-0)

玄(현)은 金文(금문)을 보면 흰 실이 꼬인 채 걸려 있는 형태다. 그게 오래되면서 색깔이 변해서 거무스름해진 것, 그게 현의 색깔이다. 그래서 검을 黑(흑)과 달리 검푸른 색으로 본다. 고대 사람들은 하늘이 이런 색을 잘 보여준다고 여겼다.

하늘을 보라. 맑은 날에는 파랗거나 푸르게 보이지만, 흐리거나 비가 오면 전혀 다른 색이 된다. 하늘은 아득히 멀리 있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데다 색깔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저 옛날 황하 유역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두 발을 받쳐 주는 이 땅과는 달리 하늘은 있기는 한데 가늠하기 어려운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주역’의 ‘坤卦(곤괘)’에 대해 풀이한 ‘文言傳(문언전)’에서도 “天玄而地黃”(천현이지황) 곧 “하늘은 가믈고 땅은 누르다”고 표현했다.

여기서 잠깐! ‘문언전’의 이 구절이 후대에 ‘천자문’에서는 ‘天地玄黃(천지현황)’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 구절을 대개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로 풀이하는데, 이는 적절하지 않다.

연암 박지원이 쓴 편지글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마을의 어린아이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다가 아이가 읽기 싫어하는 것을 나무랐더니, 아이가 ‘하늘을 보면 새파란데 하늘 천은 전혀 파랗지가 않아요. 그래서 읽기가 싫어요!’라고 합디다.”

아이는 매우 적절한 지적을 했다. 아이가 본 하늘은 파랗다. 그런데 검다고 했으니, 누가 그런 엉터리를 배운단 말인가. 아이의 총명함과 항변에는 문자를 창안했다는 蒼頡(창힐)도 기가 죽을 것이다. 그런데 왜 저 파란 하늘을 두고 ‘검다’고 했을까? ‘검다’고 할 참이었으면 五色(오색) 가운데 하나인 黑(흑)을 쓸 일이지, 왜 굳이 玄(현)을 썼을까?

현은 수많은 색깔 가운데 하나, 곧 특정한 색깔이 아니다. 땅의 누런색은 특정한 하나의 색깔이지만, 하늘의 색깔은 모든 색깔을 아우른 것이다. ‘천지현황’에는 곧 땅은 매우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와 닿는 대상이지만 하늘은 아득히 멀고 깊어서 분명하게 감지하기 어렵고 짐작하기도 어렵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래서 가물가물하고 가무스름하며 그윽하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