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거울 담(水-8)어조사 혜(八-2)없을 무(火-8)맛 미(口-5)

‘문자’의 문답(46회)을 번역하면 이렇다. 문자가 물었다. “왕은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존재인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노자가 대답했다. “강과 바다처럼 하면 된다. 싱거워서 아무 맛이 없는 듯하나 아무리 써도 마르지 않고, 작은 내들을 앞세운 뒤에 커진다. 무릇 남의 위에 있으려는 자는 반드시 그 말을 깍듯하게 하고, 남의 앞에 서려는 자는 반드시 그 몸을 뒤에 둔다. 그러면 천하 사람들은 반드시 그의 기뻐함과 사랑을 본받고 그의 어짊과 올바름으로 나아가므로 사나운 기운이 없어진다. 그런 왕은 위에 있어도 백성이 무거워하지 않고 앞에 있어도 민중이 해롭게 여기지 않으니, 천하 사람들은 기꺼이 그를 받들면서 싫증 내지 않는다.”

싱거워서 아무 맛이 없는 듯하다는 것은 뛰어난 덕성과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뜻이다. 왜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가? 사사로운 욕심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재주와 지모가 뛰어나고 욕심도 있는 사람은 자신을 내세우므로 당연히 도드라진 맛이 있다. 한편, 이렇다 할 능력이나 덕성이 없는 사람은 참으로 아무 맛이 없다. 싱거워서 맛이 없는 ‘淡兮無味’(담혜무미)가 아니라 메말라서 맛이 없는 ‘無味乾燥’(무미건조)다.

흔히 싱거움을 맛이 없는 것으로 여기지만, 깊은 맛은 거기에 있다. 우리네 밥상을 보라.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으니, ‘밥’이다. 밥은 별다른 맛이 없고 맛은 반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참으로 맛있는 맛은 밥에 있다. 밥은 씹으면 씹을수록 맛이 새록새록 느껴지지만, 반찬은 몇 번 씹으면 맛이 사라진다. 밥맛이야말로 맛의 으뜸이다.

당연히 반찬도 중요하다. 반찬의 그 톡톡 튀는 맛도 있어야 한다. 입맛을 잃었을 때는 반찬의 그 튀는 맛이 입맛을 살려준다. 그러나 제맛을 너무 드러내 쉽사리 싫증 나기도 한다.

그래서 아무리 맛있게 만든 반찬이라도 날마다 밥상에 오르면, 짜증을 낸다. 이른바 반찬 투정이다. 그러나 밥은 날마다 같은 쌀로 지어 올려도 물리지 않는다. 밥 투정하는 일은 없다. 이 밥과 같은 이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노자의 뜻이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