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분해질 정(宀-5)고요할 정(靑-8)편안할 안(宀-3)생각할 려(心-11)

'知止(지지)' 곧 "멈출 줄 안다"는 말은 맞닥뜨린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자신은 당장에 이 상황에 대응할 마음가짐도 되어 있지 않으며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모자란다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정한다는 뜻이다. 문제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고서 어떻게 문제의 해법을 찾고 돌파구를 제대로 마련할 수 있겠는가? 문제나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면 자신의 무능력이나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하여 부정하거나 숨기려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상황 자체가 이미 그런 자신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서 大人(대인)이 되고 賢者(현자)가 되고 聖人(성인)이 되겠는가? 그들은 인정할 줄 안다. 자신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무슨 일이든 다 할 수는 없다는 사실, 얼마든지 난처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자신을 어려운 지경으로 내몰지도 않지만, 자신이 바라지 않던 지경에 이르더라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일 줄 안다. 그렇게 멈추어야 할 때를 알고 멈춤으로써 지혜로워졌다.

멈출 줄 알고 멈추어야만 차분해질 수 있다. 억지스럽게 멈추기만 하면, 마음이 가라앉는 것도 잠시뿐이고 곧 다시 마음은 분탕질을 친다. 오히려 더욱더 헷갈리면서 답답함만 더해진다. 그러다 보면, 맞닥뜨린 상황을 회피하려 하거나 다른 누군가를 또는 세상을 탓하며 불평을 늘어놓게 된다. 그게 아니면, 자신을 도닥거려줄 누군가를 허위허위 찾거나. 어쨌든 마음은 들썩이고 생각은 갈피를 잡지 못하니, 고요해지기 어렵다. 따라서 멈출 줄 알고 멈추어야 차분해지고 이어 고요해진다. 이것이 '定而后能靜(정이후능정)'이다.

고요해진다는 것은 몸도 마음도 바깥 사물이나 현상에 영향을 받지 않음을 의미한다. 일단은 자신을 잡도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자신을 잡도리하게 되니, 편안해지지 않겠는가? '靜而后能安(정이후능안)'에 담긴 뜻이 이것이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마음이 편안해야 자신도 대상도 제대로 보고 사태를 한결 분명하게 인식할 여지가 생긴다. 그래서 '安而后能慮(안이후능려)' 곧 "편안해진 뒤에야 제대로 생각한다"고 말한 것이다.

제대로 생각하게 되면, 그제야 사물의 本末(본말)과 終始(종시), 즉 무엇이 뿌리고 무엇이 곁가지며 우듬지인지를 구분할 수 있고 또 이런 문제가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를 오롯이 파악하게 된다. 이렇게 본말과 종시를 알게 되면,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지를 깨닫는 일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고전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