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를 안(扌-6) 그림 도(口-11) 찾을 색(糸-4) 천리마 기(馬-16)

길에 대한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이전에 갔던 길도 곧장 헤매는 사람을 길치라고 놀린다. 요즘엔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으로 처음 가는 길뿐 아니라 등산로도 겁 없이 간다. 하지만 가르쳐주는 기계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더 좋은 길을 놓치는 일이 생긴다. 그림에 그려진 대로만 따라(按圖) 천리마를 찾아 나선다(索驥)는 이 말도 원리원칙만 따지고 융통성 없이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천리마라 하면 떠오르는 대로 伯樂(백락)의 아들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伯樂子(백락자)나 按圖索駿(안도색준)이라 써도 같다.

앞서 나왔던 伯樂一顧(백락일고, <28>회)로 잘 알려진 백락은 春秋時代(춘추시대) 周(주)나라의 명마 감별사였다. 본명이 孫陽(손양)인 그는 秦(진)나라의 신하로 있으면서 相馬經(상마경)이란 저작도 남겼다. 하지만 아들까지 훌륭하게 키울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조금 모자라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 고르는 법을 배우려 했다. 좋은 말이란 이마는 불쑥 나와야 하고 눈은 툭 튀어나와야 하며, 발굽은 누룩을 쌓아 올린 것처럼 생겨야 한다(隆顙蛈日 蹄如累麴/ 륭상철일 제여루국)고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열심히 익혔다. 顙은 이마 상, 蛈은 땅강아지 철. 아들은 책을 가지고 좋은 말을 구하려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며칠이 지나 아들이 큰 두꺼비를 잡아 와 아버지께 보이고선 책에 있는 명마와 똑같다고 말했다.

백락은 기가 막혀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겨우 진정하고 웃으며 말했다. '이 말은 잘 뛰기는 하겠지만 수레는 끌지 못하겠구나(此馬好跳 不敢御也/ 차마호도 불감어야).' 明(명)나라 때의 학자 楊愼(양신, 1488~1559) 등이 쓴 '藝林伐山(예림벌산)'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식과 경험은 없이 책에 있는 내용에만 의지해서 일을 처리하는 것을 가리킨다.

많이 언급됐지만 한국 1위의 한진해운이 그토록 오랫동안 자율협약을 한 끝에 나온 결론은 법정관리였다. 국제 물류 영향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원칙대로만 밀어붙인 결과 수출은 내리막길이고 국가신인도까지 휘청댄다고 한다.

반면 부정청탁금지법(김영란법)이 처음 시행된 공직사회는 복지부동한다고 보도됐다. 업무에 필요한 사람 만나기도 꺼리고 애매한 민원전화는 문서로 요청하라며 회피한다. 국민권익위 해석이 나와야 전례가 된다며 올스톱인 판이니 매뉴얼이 완성되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여기나 저기나 융통성이 없어 답답하다.

언론인·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