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흥(臼-9) 맑을 청(氵-8) 망할 망(亠-1) 맑을 청(氵-8)

'젊음을 흥청망청 보내다', '돈을 흥청망청 쓰다' 등으로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흥청망청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어원으로 내세우지 않지만 여러 곳에서 興淸(흥청)과 亡淸(망청)의 어우러진 말이라 보고 있다. 조선의 폭군이라면 제일 먼저 꼽히는 燕山君(연산군)은 採紅使(채홍사), 採靑使(채청사)란 벼슬아치들을 두고 미색을 탐했다. 채홍사는 조선 팔도의 창기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여인들을 가려내는 임무를 수행했고 채청사는 아름다운 처녀를 구하는 것이 임무였다고 한다.

연산의 악행은 수도 없이 많지만 음행을 즐기기 위한 여성 편력을 보자. '中宗實錄(중종실록)' 제일 첫 부분에 죄상을 늘어놓고 흥청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흥청이란 말은 '나쁜 기운을 씻어낸다'는 의미로 기생을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女妓(여기)란 말을 고쳐 運平(운평)이라 하고 전국에서 뽑혀 올라 온 기생 중에서 왕을 가까이서 모시면 地科(지과)흥청, 더 귀여움을 받아 잠자리를 하게 되면 天科(천과)흥청이 되었다. 밤낮으로 향락에 빠진 연산이 이들 기생에만 만족할 리 없었다. 대궐 안에서 연회가 열릴 때 사대부의 부인으로 참여한 여인들은 모두 그 남편의 이름을 옷깃에 붙이게 했는데 미색이 뛰어난 사람은 머리 손질이 잘 안 되었다는 핑계로 그윽한 방으로 끌어들여 간통했다.

연산의 백부인 月山大君(월산대군)의 후처가 어느 날 뜰을 거닐던 왕의 눈에 띄었다. 미모에 반한 연산은 큰어머니가 되는데도 불구하고 잠자리 시중을 들게 했다.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백모는 자결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연산이 흥청을 위시하여 많은 여인과 황음에 빠졌으니 오래 가지 못하고 망하는 것을 자초한 것이라 망청이라 했다. 망청에는 따로 지칭하는 것이 없이 흥청거리다 망했다는 말이다. 그 뒤 흥에 겨워 멋대로 즐기거나 돈과 물건을 마구 쓰는 것을 가리키게 됐다.

최근의 흥청망청이라면 대뜸 대우조선해양이 떠오른다. 얼마 전 감사원이 밝힌 자료에서 2013년부터 2년간 1조5000억 원대의 분식회계로 2000억 원이 넘는 임직원 성과급 잔치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적을 부풀려 적자에서 흑자로 바꾼 사실도 모르고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거수기 역할만 한 것이다. 이렇게 하고도 정부는 4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했으니 국민의 돈으로 부실기업 임직원들의 호주머니만 채워준 꼴이다.

언론인·한국어문한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