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숙(宀-8)범 호(虍-2)찌를 충(行-9)코 비(鼻-0)
호랑이도 건드리지 않으면 사납게 굴지 않는다. 더욱이 자는 범이어서 옆을 살금살금 지나가면 그뿐이다. 그런데 턱없는 용기를 시험하는 것일까?
잠든 호랑이에 다가가서 코침을 놓는 사람들이 있다. 선잠에서 깨어난 호랑이는 더욱 사나워질 것이다. 宿虎衝鼻는 '자는 범 코 찌르기'란 속담과 같은 말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공연히 건드려서 화를 입거나 일을 불리하게 만드는 것을 이른다.
이 말도 조선 인조 때의 洪萬宗(홍만종)이 쓴 '旬五志(순오지)'에서 볼 수 있다. 보름이 걸려 책을 완성했다 해서 이름을 '순오지'라 했다는 그 책이다. 중국에는 쓰지 않는 성어가 숱하게 등장한다.
예를 들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를 鯨戰鰕死(경전하사)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를 猫項懸鈴(묘항현령)으로 했으니 흥미롭다.
그런데 순오지에는 '宿虎衝本 言誤觸而取患(숙호충본 언오촉이취환/ 잠자는 호랑이에게 코침을 주듯 잘못 건드려서 화를 초래한다)'으로 되어 있고 조선 후기 朴慶家(박경가)가 지은 한국어 어원연구서 '東言考略(동언고략)'과 趙在三(조재삼)이 쓴 '松南雜識(송남잡지)'에 宿虎衝鼻로 바로 나온다. 그리고 茶山(다산) 丁若鏞(정약용)이 엮은 '耳談續纂(이담속찬)'에는 '虎方之睡 莫觸其鼻 言不可挑禍也(호방지수 막촉기비 언불가도화야/ 호랑이가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코를 건드리지 마라. 괜히 화를 자초해서는 옳지 않다)로 되어 있다. 어느 것이나 뜻은 같다. 풀숲을 쳐서 뱀을 괜히 놀라게 한다는 打草驚蛇(타초경사)도 같은 뜻이다.
'13월의 보너스'라는 연말정산의 수식어가 '13월의 세금폭탄'으로 바뀌었다고 분통을 터뜨려 온 납세자들은 당정이 부랴부랴 내놓은 처방마저 땜질이라며 여전히 부글부글 끓고 있다. 전 자민련 김종필 총재도 국민은 언제 호랑이로 변할지 모른다고 한 회견에서 말했다. 대부분 부담이 안 될 것이란 초기 발표만 믿고 잠자고 있다가 코침을 맞은 호랑이격이다. 아무리 무서운 힘을 가진 호랑이라 할지라도 주변의 움직임을 잘 살피지 않으면 하찮은 여우나 토끼가 와서 집적일 수가 있다. 물론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만 모양새가 빠진다. 자기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눈을 부릅떠 있어야 코가 베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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