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 웬 군부대냐고? 부산사람에게 부대는 부산대학교를 줄인 말이고, 부대 앞에 놀러가 본 기억들은 십대부터 육십대 이상 노년층까지 안갖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대학가는 그 지역을 먹여 살리는 지역경제의 핵심축이었다. 재학생은 물론 교수 교직원, 그리고 대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중고생들부터 젊은 활력을 느끼고픈 중년들까지 대학가에 몰려들어 먹고 마시고 저마다의 놀거리를 찾았다.
중학생 때 장전상가시장 지하에 가면 음식백화점이 있었다. 우동 떡볶이 김밥 등 일반적인 분식을 파는 점포들이 사각형 바 모양으로 모여 있었는데 우리들이 거기를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한 개 100원하는 감자샐러드가 들어있는 고로케는 동네 분식점에는 없는 거기만의 특별메뉴였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그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속을 든든히 채우고 동성극장이나 온천극장으로 문화생활을 하러 나서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으로 미팅이란 걸 하려고 들어간 카페들은 또 얼마나 신기했던지. 온갖 단 것들로 가득 채워진 파르페를 시켜놓고 앞에 앉은 여학생에게 무슨 재미있는 얘기를 해볼까 숟가락만 빨다 시간을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나와선 친구들과 지하 호프집으로 기어들어가 500㏄ 한 잔을 마시며 내 인생 최대의 일탈을 저지르는 짜릿함을 만끽했었다. 그러다 밖을 나왔는데 난데없는 최루탄 연기에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혼비백산하기도 했었다.
후문 가까운 쪽에 구도라고 있다. 동네 독서실도 있었지만 대학생 형 누나들 사이에서 수학의 정석과 성문종합영어를 펼쳐놓고 앉아있는 기분도 은근 묘했다. 부대 다니고 있는 형이나 누나가 있는 친구랑 같이 가서 밥을 얻어먹는 재미도 쏠쏠했다. 그러다 학력고사를 한 달여 남겨둔 쌀쌀한 가을 날, 초등학교 때 좋아했던 여자 동창과 영화처럼 구도에서 마주치게 된다. 떨리는 목소리로 잘 지냈냐며 시험 준비는 잘 되느냐고 안부를 묻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돌아와 볼펜만 수백 바퀴를 돌리다 다시 그녀에게 다가가 “이따 집에 갈 때 같이 갈래?” 어둑어둑해진 저녁, 교문을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최대한 천천히 걸어 버스를 타고 그녀의 집 앞 버스정류장에 내려 헤어지며 “시험 잘 봐.”
스무살이 넘어 부대 앞에 와서는 몽크에 한번씩 갔었다. 하드록이나 재즈를 신청하면 틀어줬던 몽크는 부대 앞에서 경성대 앞으로 옮겼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한다. 교문 바로 앞 도로에서는 데모도 자주 했었지만 무대를 차려놓고 밴드 공연을 하는 모습도 종종 봤다. 한때 부산이 인디밴드의 산실이었다는 자긍심을 간직하고 있는 이도 만나봤다. 전철역 아래 온천천변이 온갖 낙서로 가득 채워져 한때 부산대역이 그래피티의 성지로 전국에 알려졌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들어봤다.
지하철 1호선이 개통하면서 부대 앞 상권은 폭발적으로 확장됐고, 지하철 출구에서 학교로 올라가는 골목이 명동 거리처럼 인파로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추억이 서린 부대 앞을 가보니 이제는 한집 건너 빈 점포고, 통째로 비어있는 건물도 제법 눈에 띈다. 일이년새 그런게 아니고 코로나 이후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테고, 많은 해법이 제시되고 시도됐을 것이다. 다시 금정구로 돌아와 보니 구정의 핵심과제 중 하나가 부산대 거리 활성화였다.
꼬맹이 시절부터 왜 부대 앞에 놀러왔었나 생각해봤다. 거기 가면 뭔가 재밋거리가 있었다. 사고 싶은 책과 음반, 먹고 싶은 음식, 몰래 드나들던 당구장, 뭔지 모르지만 활기차고 들뜬 느낌을 주던 거리였다. 그래, 그럼 우리 문화재단은 부대 앞에 올 거리를 만들면 되겠네. 이번 주말 부대 앞에서는 부산국제공연예술제라는 거리예술축제가 열린다. 전철 선로 아래, 온천천 물 위에 조성된 무대가 있었다. 다리 밑, 물 위라는 공간이 주는 오묘한 느낌이 나를 자꾸 끌어당긴다. 수많은 축제 무대를 경험해봤지만 이곳은 다시 나에게 새로운 시도를 해보라며 속삭이는 것만 같다. 이번 주 금 토 일, 다리 밑, 물 위에서 예술가들과 함께 들썩이고 싶은 분들은 부대 앞으로 오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