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에서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돈 쓰는 사람 따로 있으면 그 집은 화목할까? 국가도 마찬가지다. 누구는 열심히 일해서 세금 내는데 누구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이런저런 명목의 보조금을 받는다면 공동체의식도 사라질 것이다.
보조금을 지급받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크고 집중돼 있어 선거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강하게 표현하지만, 이를 부담하는 나머지 납세자들은 보조금 폐지로 아낄 수 있는 세금이 1인당 얼마 되지 않아 무관심하고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정치 공학적으로는 특정 단체의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득표를 위해서는 유리하고 그런 이유로 한번 신설된 보조금은 폐지하기 어렵다. 이는 정치학 경제학에서 다루는 ‘집단 행동의 논리’ 및 ‘분배적 정치’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바이오 연료 육성을 위한 옥수수 에탄올 보조금이 실제 탄소 감축 효과가 미미함에도 폐지되지 않는 이유가 대통령 선거 풍향계 역할을 하는 아이오와주의 득표를 위한 것이라든지, 석유 시추 기업에 지급되는 지질 탐사비용 보조금이 이들 기업의 정치 후원금과 텍사스 등 석유 생산지 의원들의 집요한 로비로 폐지되지 않고 있는 것 등이 그러한 사례로 설명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쌀 시세가 정부 목표 가격보다 떨어지면 차액을 국고 보조금으로 메워주던 쌀 변동직불제(쌀 소비량은 매년 줄어드는데 보조금 때문에 쌀이 과잉 생산되고 이로 인해 쌀값이 하락하면 정부의 보조금 지출이 증가) 등이 그러한 사례로 설명된다.
이러한 ‘이익의 집중, 비용의 분산’은 우리 사회의 여기저기에서 불공정의 씨앗을 남기고 있다. 최근 전북특별자치도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연 120만 원의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역사적 명예회복 및 예우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것은 ‘이익의 집중, 비용의 분산’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2024년 특별법으로 동학농민운동에 ‘혁명’이라는 이름이 부여됐지만 혁명이라 불리기 위해서는 국가와 계급구조의 근본적 전환, 새로운 사회질서가 창출돼야 하는데 그러한 기준을 충족하지 않아 혁명으로 분류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1894년 혁명 당시 번듯한 족보가 없을 가능성도 많은 혁명 참여 농민의 후손이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또한 정식 재판을 거치지 않은 농민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라는 점을 인정할 방법도 없을 것이다. 당시 시국이 어지러워지자 동학과 관련 없는 일반 도적떼들이 동학군의 깃발이나 칭호를 사칭하며 민가를 약탈한 일이 번번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존재한다. 결국 ‘위원회’를 만들어 유족 인정 여부를 결정할 것인데, 그 위원회도 이를 인정할 마땅한 방법이 없기에 결국 그럴듯한 형식으로 신청만 하면 기계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가족 간 전승되는 이야기를 자세히 서술해 보내주면 된다’는 식의 ‘구전(口傳) 내력 서술서’를 증빙 자료로 요구하고 있고, 신청자의 83% 이상이 심사를 통과해 유족으로 인정됐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려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보조금이 지급되는 것을 누가 반대할 것인가? 그러나 동학농민혁명이 그 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가? 동학농민혁명이 반봉건개혁, 항일 운동의 모태로서의 성격도 있지만 동학교도 상당수가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 회원으로 변신한 점, 동학농민군의 민가에 대한 약탈 등 폐해가 심했던 점(지도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동학농민군 부대에서 민가의 재산을 탈취해 안중근 의사의 부친인 안태훈이 민보군을 결성해 황해도 지역에서 세력을 넓히던 이들과 전투를 벌여 진압), 쇄국을 외치며 개화에 역행하는 전근대성을 보인 점 등 비판을 받아야 할 부분도 존재한다. 이렇게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사안을 두고 ‘성역화 작업’에서 나아가 그 후손들에게 보조금까지 지급하는 것을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지. 감옥에서 9년을 보낸 재야 운동권의 대부로서 김영삼 정부 시절 “누구나 자기 영역에서 국가에 기여하는데,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보상금을 받는 게 말이 되느냐”며 민주화 운동 보상금 수령을 거부했던 고 장기표 선생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