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은 1945년에 창설된 것을 기념해 제정된 77번째 유엔의 날(국제연합일)이다. 우리나라가 유엔에 가입한 것은 1991년 9월이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16개국에서 군인을 파견했고 6개국에서 의료를 지원했다. 유엔 창설 이후 최초이자 마지막 참전이었다. 지금은 유엔평화유지군이라는 이름으로 분쟁 혹은 재난지역에 파병되지만 중립 입장에서 치안유지를 위해 활동하며 한국전쟁과 같이 교전에 투입되지 않는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참전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유엔기념공원은 1955년부터 유엔이 영구적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공간이다. 오랫동안 부산시와 전문가, 많은 시민이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애써온 ‘피란수도 부산’의 하나이며, 이곳에서 매년 유엔의 날 기념식이 열린다. 또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자 매년 11월 11일 11시, 1분간 사이렌이 울리면 세계가 동시에 부산을 향해 묵념한다. 부산, 바로 유엔기념공원을 향해 하나 되는 순간, ‘턴 투워드 부산(Turn Toward Busan)’이다. 캐나다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빈센트 커트니 씨가 2007년 제안·발의했고, 2008년부터 정부 주관행사로 격상됐으며, 2014년부터 유엔 참전국과 함께해 국제추모행사로 개최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가 뭐라 해도 부산과 유엔은 ‘찐친’이다. 그렇다면 10월 24일 유엔의 날과 11월 11일 턴투워드 부산을 알고 경험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같은 날인 빼빼로 데이를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더 어렵지 않을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지만 잊지 않고 기억만 해서도 안 된다. 기록하고 기억하며 나아가 탐구하고 발전시켜 새롭고 다양하게 성장해야 한다.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를 준비하고 만들어 가야 한다.
수년 전 미국 연수를 다녀온 지인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베테랑(재향군인)들이 여전히 그들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당시의 일기나 경험을 바탕으로 발간한 책이 적잖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는 귀국하며 가져온 베테랑의 저서를 기어코 번역해 내어 그 뜻을 실천했다. 더 많은 참전용사의 서적이 번역되고 알려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전해졌다. 사진 전시회에서 우연히 미군 참전용사를 만난 이후 해외 참전용사들을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하는 라미 현 사진작가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제주는 세계적인 자연환경과 4·3 사건 등을 증언과 기록으로, 유물과 장소복원으로 기억하며 4·3평화공원 평화기념관 등 공간으로, 평화연구원과 제주(평화)포럼 등을 통해 소통하고 연구하며 평화의 섬으로 성장하고 있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역사를 기억하는 건물로 설계되고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됐다. 유엔 역시 세계평화를 위해 1992년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발전 아젠다를 시작으로 2015년 ‘아무도 뒤처지지 않도록(No One Behind)’ 국제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목표 17개를 제시하고 자발적 이행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성장하고 발전하는 평화를 경험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이러한 평화가 축적되면 한반도의 평화는 곧 통일로 가는 길이며,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평화는 균형발전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유엔기념공원, 유엔의 날과 턴투워드 부산은 세계 평화의 상징이다. 그 의미나 가치는 제주와 광주에 비해 부족하지 않다.
유엔의 날과 턴투워드 부산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도록 알리고 참여 기회를 넓혀야 한다. SNS 릴레이 캠페인이나 플래시몹 등 오프라인 행사가 아니어도 좋다. 유명무실한 유엔평화문화특구는 유엔기념공원을 비롯해 인접한 관련시설들을 보행 접근성과 쾌적성을 높일 수 있도록 15분도시의 개념을 도입하고 국가 주도로 평화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 경제 도시 역사 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때마침 부산대에서 유엔의 날에 맞춰 오는 21~24일 ‘유엔과 한국전쟁’을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국제 학술행사로서 ‘유엔과 한국전쟁’을 주제로 개최된 전례가 없다. 마지막 날 국내외 학자들이 함께 유엔의 날 기념식에 참여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가올 빼빼로 데이에 빼앗긴 역사를 이제 찾아와야 할 때다.
김지현 부산대 통일한국연구원 균형발전연구센터장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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