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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터치] 답은 내 속에 있습니다만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16 19:53:12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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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해 바닷가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갯바람이 부는 바닷길을 조금 걸었습니다. 북적이지 않는 바다가 마음을 풀어놓기에는 더없이 좋습니다. 지인에게 바다를 좀 보고 있다니까 혼자 바다를 즐겨 찾는 사람은 후회하는 일이 많아서 그렇다는군요.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닙니다. 삶은 온통 후회투성이잖아요.

며칠 전 어느 잡지 편집장으로부터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을 몇 줄 적어달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무거운 물음이었습니다. 이 말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를 되묻는 것이며,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 확인하려는 일과 같았습니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면 절박한 언어로 쓰인 생존어가 스프링 튀듯 튕겨 나와야 합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내 의식은 막막하고 고요합니다.

답은 내 속에 있습니다만, 요지부동이군요. 그것은 저절로 자랄 수도 있고 내가 살뜰히 키우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가끔 어떤 떨림으로 와닿기도 하고 아찔한 향기로 취하게도 하며 긴 그림자로 불안을 덮어주기도 하지만 침묵으로 잠잠할 때도 있어서 때로는 목메고 가슴 쓰라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그도 정녕 나를 친애하겠지요.

나는 그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눈물겹게도 나는 그것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인생이 꺼질 것처럼 힘들고 지칠 때가 있었습니다. 끝까지 가버린 목숨을 여럿 보고 난 뒤는 허망했습니다. 청춘을 바친 세월이 배반으로 돌아왔을 때는 절망스러웠습니다. 한때 내 왼손에 꼈던 가장 빛나던 반지도 녹슬어버렸습니다. 삶의 모서리에 약간만 부딪혀도 쉽게 깨지고 부서졌습니다. 죽음 같은 캄캄한 바닥을 기었습니다. 그때 목숨줄과 함께 꽉 붙잡은 것, 그것이 촉을 틔우고 줄기를 뻗어 되레 내 몸을 친친 휘감았습니다. 나는 일어서야 했습니다. 휘청거리지 않도록 뿌리를 내려야만 했습니다.

광풍이 할퀴고 간 자리는 잔인했지만, 다시 바람은 부드러워졌고 대지는 단단해져 갔습니다. 그가 나를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게 하는 동안 가을은 벌써 스무 번도 넘게 다녀가셨더군요. 비로소 내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나였다고 믿은 것이 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아니었다고 생각한 것이 나였음을 알았지요. 세월의 흐름을 느낄 때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의 “너는 네 세상 어디에 있느냐? 너에게 주어진 몇몇 해가 지나고 몇몇 날이 지났는데, 그래 너는 네 세상 어디쯤 와 있느냐?”는 말을 되새깁니다. 그 질문이 ‘너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말과 같은 이치임을 이제야 인지합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그를 찾으려면 나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것은 내 몸 변두리 어디쯤 웅크리고 있거나 눈에 절대로 뜨일 수 없는 뒤통수 쪽에서 반쯤 고개를 내밀고 명상이라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어쩌면 화염 같은 열정을 가졌거나 맹수의 발톱 같은 상상력으로 무장했을지도 모릅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 감정선이라도 긁히면 뒷수습을 감당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분명 나는 그의 존재를 느낍니다. 나태해진 영혼에 매질하고 박약한 의지는 곧추세워주며 꾀꾀로 내 육신과 정신을 거풍하므로 눅눅했던 내가 헹구어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소 생각의 품이 넓어져서 잠시 섬광 같은 글줄이 반짝이게 됩니다. 서둘러 그의 행적과 그가 전하는 말을 기록해 둬야 할 때입니다. 나아가 그의 기질을 모방하고 그의 생각을 베껴먹고 그의 언어를 흉내 냈습니다. 그리하여 어쭙잖게 예닐곱 권의 책을 묶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결코 나의 훌륭한 공적이 못됩니다. 더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았고 좀 더 치열하게 쓰지 못한 채 매번 허덕거리는 나의 글은 늘 미완으로 끝납니다.

하지만 이 가을, 나는 그와 함께 조금씩 깊어지려 노력할 것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드디어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답이 보이는군요. 그러니까 그 답은 구도의 자세로 진중하고 엄숙하게 말해야 합니다. 내 생을 받치는 신성한 기둥이 바로 글의 힘이라 불리는 ‘글심(心)’이니까요.

김정화 문학평론가·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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