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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세이] 과학과 재즈

  • 국제신문
  •  |   입력 : 2022-09-26 19:26:18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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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담론에는 개인의 다양한 가치관이나 신념까지 반영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과학은 인간적 관점에서 어딘가 경직된 것 같고 사유가 풍성하게 느껴지지 않아요.”

우연히 과학과 친숙하지 않은 한 소설가의 말을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학을 좋아하는 이들은 우주 어느 곳에서든 똑같은 법칙이 작동한다는 보편성이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개성이 개입할 여지가 없이 일괄적으로 적용된다는 점이 고지식한 법규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과학적’이라는 단어를 남용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과학은 절대진리와 동치가 아니다. 그렇다고 공상이나 믿음의 결과물도 아니다. 과학은 여러 단계의 엄격한 검증을 거쳐 구축된 집단 지성의 지혜다. 비록 100%의 참을 담보하지는 못하지만, 현시대가 제시하는 최선의 답이다. 간혹 지진처럼 불쑥 나타난 미완의 요소에 의해 흔들리고 무너질 수도 있지만, 과학 지식은 대체로 오랜 시간을 거쳐 견고한 구조물처럼 쌓아 올려지는 경우가 많다. 외형의 모습은 시계나 악기처럼 엄밀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구조를 지닌 듯 보이지만, 어딘가 잠재적 변화의 요소가 숨을 쉬고 있는 듯한 과학의 이런 모습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과학은 재즈를 닮았다. 특히 재즈의 ‘스윙’을 닮았다. ‘스윙’은 리듬에 이끌려 몸을 흔들다(swing) 춤을 추게 만드는 흥겨운 재즈의 한 장르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당기거나 끌려가는 듯한 찐득한 특유의 리듬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윙’의 느낌은 개인마다 달라 음악의 보편적 규칙과 틀로는 담을 수 없다.

과학도 그렇다. 신의 말씀이 적힌 똑같은 경전의 텍스트에 대해서 조금씩 다른 의미로 해석하는 다양한 종파처럼, 과학자들도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는 특정 이론에 대해 전반적으로는 유사하게 이해하지만 각자 미묘하게 다르게 해석하는 부분이 있다. 같은 악보를 각자 다른 느낌의 ‘스윙’으로 연주하는 재즈연주가처럼, 과학 이론도 다양한 개성에 의해 다채로운 모습이 될 수 있다.

이를테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파이만, 위그너 같은 물리학자들은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할 수 있는 전자의 양자역학적 특성에 대해 각자 다른 느낌의 물리학 ‘스윙’을 지니고 있었다. 언뜻 생각하면 과학자 개성의 다양함이 혼란을 초래할 것 같지만 재즈가 지닌 변화와 유연함의 매력처럼 오히려 과학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어쩌면 과학적 창의성은 그곳에서 만들어지는지 모른다. 과학은 그렇게 진화한다.

최근 SNS에서는 재즈 수업 중 나이 지긋한 백발의 스승이 ‘스윙’을 설명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스승은 학생들의 합주를 멈추게 한 뒤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시작했다. “각자가 ‘스윙’을 해야 해. 드럼이 만들어 놓은 기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야. 혼자서 ‘스윙’을 해야 하네.” 그리고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하며 ‘스윙’의 느낌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스승의 연주를 듣고 있던 학생들처럼, 아마도 전 세계 재즈 마니아들도 그의 연주를 들으며 탄성을 내뱉었을 것이다.

틀에 박힌 방식으로 악보를 해석한 건조한 음악처럼, 경전을 암기만 한 동자승처럼, 연구를 막 시작한 이공계열 학생도 한동안은 자신이 배운 과학 이론을 법전처럼 받아들이고 단순히 적용하려고만 한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 자신만의 과학적 ‘스윙’을 발견하는 순간부터 진정한 과학의 맛을 알게 된다. 그 작은 ‘스윙’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연구 색깔이 드러나고 독창적 과학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비단 과학뿐만 아니라 다른 학분 분야나 초등학생 교육 키워드로 등장하는 자기주도학습, 심지어 개인의 삶조차도 모두 자신만의 ‘스윙’에 의해 작동할 것 같다.

절대성을 부여하는 순간부터 이론은 교조적 신앙이 되고, 개성이 반영되지 못한 획일성은 사유의 숨을 멈추게 한다. 그러므로 각자 자신만의 ‘스윙’을 발견하자. 그러기 위해선 재즈 스승의 말처럼 우선은 혼자서 ‘스윙’해야 한다.

김광석 부산대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감성물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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