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가 사라졌다. 달콤한 복숭아 냄새, 파릇한 풀 냄새, 고소한 들기름 냄새, 지중해산 트러플 오일 냄새가 사라졌다. 음식쓰레기 냄새, 고등어구이 비린내가 사라졌다. 초저녁 산책길, 분꽃 속으로 코를 들이밀어도 분 냄새 기척이 없다. 커피 향이 사라진 커피는 뜨겁고 쓰디쓴 검은 물이다. 노릇노릇 잘 구워진 삼겹살이 그림의 삼겹살 같다. 지글거리는 기름 냄새가 사라지자 도무지 식욕이 돋지 않는다. 학습된 기억으로 맛을 떠올려 본다. 냄새 없이는 삼겹살 맛을 제대로 묘사할 수가 없다.

몸의 냄새도 사라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에 나오는 살인자가 떠오른다. 체취는 사람의 형체 없는 지문이다. 정체성이며 존재의 기표이다. 절대향감을 가진 조향사가 막상 자신에게는 냄새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가장 향기로운 사람 냄새 향수를 제조하기 시작한다. 체취는 페로몬을 포함하고 있어 사람을 끄는 인력, 매력이 되기도 하고 사람을 밀어내는 척력이 되기도 한다. 사람 냄새에는 나이가 들어있다. 아기 냄새는 달콤하고 청년 냄새는 당당하다. 목욕을 기피하는 프랑스 궁정에서 몸의 악취를 은폐할 용도로 향수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냄새는 온도가 높으면 더 잘 확산된다. 액화 상태 물질이 기화하면서 특유의 냄새가 공기 중으로 빠르게 퍼져나간다. 공공이 이용하는 공간에서 냉방의 부수효과 하나는 사람 몸 냄새 확산의 감소라 한다.

사실 사라진 것은 냄새가 아니라 후각이다. 향수를 뿌려보지만 풋풋한 코코마드모아젤 향도 농염한 오뒤수와르 향도 느껴지지 않는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의 냄새로 세계에 참여한다. 세계는 여전히 갖가지 냄새로 와글와글 붐빌 것이다. 나를 버려두고 냄새들은 저희들끼리 시끌벅적 찧고 까불고 오르고 퍼지고 스미며 냄새의 난장을 벌이고 있을 것이다. 나만 냄새로부터 소외된 것이다. 냄새의 향연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어도 나만 모른다.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마녀처럼 쓸쓸하다. 좋은 냄새들이 사라지니, 후각이 주는 크고 작은 기쁨들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라지고 난 뒤에야 무엇이든 발견된다. 감각이 그리는 이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하나가 닫혔다. 후각이 사라지고야 후각을 발견한다.

후각은 위험을 감지하는 안테나 역할도 한다. 타는 냄새, 썩은 냄새를 통해 위험을 경고한다. 냄새가 없는 세계는 위험하다. 후각 없는 세계는 악취가 없는 세계다. 문제는 악취가 나지 않는다고 부패도 멈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악취가 안 난다고 청정구역이 아니다. 좋은 냄새도 나쁜 냄새도 모두 중요하다.

후각은 예민하다. 쉽게 피로해진다. 곧 무디어진다. 후각기관은 휴식이 없다. 시각은 눈 감으면 쉴 수 있고, 청각은 귀 막으면 쉴 수 있고, 미각은 안 먹으면 쉴 수 있고, 촉각은 닿지 않으면 쉴 수 있다. 잠든 밤에도 세계의 냄새는 잠들지 않고 후각을 향해 돌진한다. 어쩌다 발생한 낯선 세계, 후각 없는 세계에서 한시적 냄새 다이어트를 경험한다. 휴식 없이 과로하는 후각을 역병이 휴가 보낸 셈이다.

감각 하나가 사라졌을 뿐인데, 세계가 고요해진 느낌이다. 희로애락애오욕, 물거품을 밀어 올리며 들끓던 감정과 욕망들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 같다. 사물이 삼 센티미터 아래로 내려앉은 것 같다. 해열진통제 효과이겠지만, 신생아처럼 시도 때도 없이 졸린다. 기계는 그대로인데 스위치가 없어 켜지지 않는 조명기구 같다. 냄새가 없으니 세계가 밍밍하고 멍청하게 여겨진다. 삼차원의 세계를 완성하는 나사가 빠진 것 같다. 세계가 삼차원이 아니라 이점팔 차원쯤 되는 것 같다.

후각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마비된 것이다. 후각과 함께 기능하는 미각이 둔화된 한편 감각과잉이 발생했다. 천이 살짝 닿아도 살갗이 아프다. 촉각의 통각이 항진된 것이다. 후각실종이라는 한시적 감각장애도 역병의 한 증상이다. 역병이 완치되고도 한동안 후각마비가 지속될 수 있다고 한다. 역병의 아가리를 피했다고 방심했을까. 역병의 꼬리에 강타당했다. 얼음! 나쁜 마법에 걸린 후각이 다음 주문을 기다린다. 땡!

최정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