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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통영, 봄의 제전 /이선정

현대음악 거장 고 윤이상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

벌써 20살 성년으로 성장…지역문화 큰 진전에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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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봄이 되면 경남 통영을 찾는 게 개인적 ‘루틴’이다. 통영국제음악제를 보기 위해서다. 2000년대 중반부터이니 15년쯤 됐다. 물론 사정 때문에 건너뛴 해도 있지만 가급적 빼먹지 않고 찾으려 애쓴다. 올해도 운 좋게 개막공연 합창석 표를 ‘광클’로 얻어 지난달 25일 통영을 찾았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통영의 봄 음식 도다리쑥국을 먹으며, 충무김밥과 꿀빵을 간식으로 챙기면서 소확행을 즐겼다.

나의 한 해를 통영의 봄으로 시작하게 해 준 통영국제음악제는 올해 20년, ‘성년’이 됐다. 1999년 ‘윤이상 음악의 밤’과 2000, 2001년 통영현대음악제가 확대 개편돼 2002년 통영국제음악제로 치러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코로나19로 취소된 2020년을 제외하면 20회째 통영에서 ‘봄의 제전’이 펼쳐진 것이다.

통영국제음악제는 예향(藝鄕) 통영이 낳은 세계적 현대음악 작곡가 고 윤이상(1917~1995) 선생을 기리고자 만들어졌다. 통영과 부산에서 교편생활을 하며 유치환 김춘수 등과 지역문화운동을 하던 그는 1950년대 유럽으로 건너간 뒤 독일 베를린에 정착, 동아시아 음악 요소를 서양음악에 적용한 작품으로 파란을 일으켰다. 현대음악 거장으로서 승승장구하던 그의 삶은 ‘동백림사건’으로 갈기갈기 찢겼다. 이른바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적화공작단 사건’. 1967년 서독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해 납치돼 서울로 압송된 윤이상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1969년 석방됐다. 하지만 독일로 쫓겨났고, 그의 음악은 금지곡이 됐으며, 죽을 때까지 간첩 꼬리표 탓에 모국땅을 밟지 못했다. 2006년 국정원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가 “동백림사건은 당시 (정권이) 부정선거에 대한 비판여론을 무마하고자 과장·확대 해석한 일”이라고 결론 내리자 그는 사후, 늦게나마 간첩 누명을 벗었다.

윤이상이 세계 현대음악사에 남긴 업적은 사상 논란을 떠나 위대하다. 이런 그를 기억하고자 20년간 그의 고향 통영에서 국제현대음악제가 지속됐다. 간첩 논란을 물고 늘어진 보수세력의 집요한 공격 등 그간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통영시는 예술과 정치를 분리, 음악제를 보호·유지했고, ‘아시아의 잘츠부르크페스티벌’(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로 키웠다. 해를 거듭하면서 통영국제음악제엔 큰 변화도 있었다. 초기에는 강당 수준인 통영시민회관에서 공연됐으나 이제는 부산에도 아직 없는, 번듯한 클래식 음악 전용 콘서트홀(통영국제음악당)에서 전국 클래식 음악팬들을 맞는다. 무엇보다 루체른 같은 유럽 유수의 음악축제처럼 ‘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갖춰 음악제 진행에 안정감을 확보한 점은 고무적이다. 프로그램 또한 윤이상 음악 위주에서 동시대 활동하는 다양한 현대음악가의 작품으로 선곡 범위도 넓어졌다.

올해 개막공연은 핀란드 ‘마에스트라’ 달리아 스타세브스카의 지휘로 펼쳐졌다. 특히 1부를 장식한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은 파워풀한 지휘에 힘입어 비극적이면서도 격정적었던 윤이상의 삶과 한국현대사를 떠올리게 했다. 이 곡을 만든 스트라빈스키는 윤 선생이 동백림사건으로 수감됐을 때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 세계 유명 음악인과 함께 공동 탄원서를 내 한국 정부에 항의한, 윤이상과 인연이 깊은 인물이기도 하다. 봄인지라 내심 그의 3대 발레음악 중 하나인 ‘봄의 제전’을 실황으로 듣길 원했으나 불새도 생동감 넘치는 봄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했다. 지난해 통영음악제 개막공연에선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이 연주됐는데, 작년의 봄이 ‘혁명’이었다면 올해의 봄은 ‘격동’이었다. 2부에서는 드보르작의 첼로협주곡이 선보였다. 동유럽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곡인 데다 지휘자가 우크라이나 태생이어서 그런지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오버랩돼 더 울컥했다. 연주 후 지휘자의 ‘반전(反戰) 퍼포먼스’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쉽게도 없었다.

올해는 봄에 통영을 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국제 미술축제인 제1회 통영트리엔날레가 개막했기 때문이다. 통영트리엔날레는 2017년 문을 닫은 신아SB조선소 폐공장을 주 전시장으로 한다. 이곳은 1946년 창업해 70년 넘게 통영 경제를 이끌었으나 조선업 불황으로 끝내 문을 닫은 지역 대표기업이었다. 통영시는 이 폐부지를 문화산업 거점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국제미술제를 시작했다. 부산비엔날레나 광주비엔날레 같은 대규모는 아니지만 주 전시장을 비롯, 한산도 동피랑마을 등 통영 곳곳을 현대미술장으로 만들어 아기자기하고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달 8일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못다 본 전시를 위해 이 봄이 가기 전 한 번 더 통영을 들러볼 생각이다.

시간 자연 명상 미래 등을 소재로 한 이번 트리엔날레의 주 전시장 1층에 들어서면 보이는 작품 속 명어를 곱씹는다. “조용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풀은 스스로 자란다.”(선에 관한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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