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 그냥 흘러간 기분이다. 2018년 6월 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다음 날 하루아침에 급변한 부산정치 지형도에 누구나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선거가 다가왔다. 당시 부산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상대로 ‘퍼펙트 승리’를 거뒀다. 부산시장에다 시의회 권력까지 장악한 민주당은 16개 기초단체장 중 13곳을 차지했다. 1991년 지방의원에 이어 자치단체장까지 주민이 직접 선택하게 된 1995년 6월 대한민국 지방자치제가 본격 개막한 이래 부산에서 기초단체장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던 민주당으로선 경이적인 성적표였다. 한국당은 수영·서구 두 곳만 가져갔다. 기장군수는 무소속 후보에게 돌아갔다. 기초의회도 민주당 우위로 꾸려졌다.
부산시민은 1990년 1월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민주자유당으로 한데 뭉친 3당 합당 이후 30년 가까이 지속한 특정 정당 중심의 권력구조를 한순간에 판 갈이 했다. 2018년 지방선거의 시민 결단은 부산정치권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겠다.
앞서 한나라당, 새누리당 등으로 이름은 바꿨지만 국민의힘 계열의 정당 세력은 부산에서 난공불락의 권력을 휘둘렀다. 선거에서 이 당 후보 자리만 꿰차면 됐다. 출마자들이 ‘묻지 마 한 표’를 행사한다는 유권자보다는 당 공천에 더 치중했던 이유다. 물론 지역 중심구도가 선명했던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정치구도를 시민이 ‘혁명적인 수준’으로 갈아엎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그때는 그랬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2017년 5월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승리한 뒤 1년여 만에 지방선거가 이어졌다. 지방선거를 눈앞에 둔 2018년 4월 27일과 5월 26일 판문점에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데 이어 선거 전날(6월 12일)에는 첫 북미회담이 확정됐다. 이후 ‘깜짝 이벤트’ 논란이 일었지만, 세계가 주목한 남북과 북미 정상 간의 만남 소식은 선거정국의 파괴력이 엄청났다. 여당 진영은 수월한 선거전을 펼쳤다. 그래도 부산에서는 야당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정치권은 내다봤다.
야당 측은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옛말에 기대를 걸었던 모양이다. 일부를 빼고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여당 후보들을 상대로 해볼 만한 싸움이라는 시각이 야당 내부에 존재했다. 여당 측도 이를 일정 부분 인정했다. 오랜 기간 뿌리 내린 정치구도와 시민 정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예상 못했던 결과라는 말이 나왔다.
4년 전 부산선거에서 민주당은 시의원과 기초단체장 후보 공천 과정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실제 선거가 다가올수록 당선 가능성이 상승했다는 시의원 쪽으로 후보들이 몰렸다. 대신 야당과의 힘든 싸움을 우려해 기초단체장에 나설 후보는 적은 편이었다. 시의회 출마 희망자를 기초단체장 후보로 전환 배치하는 ‘묘책’을 쓰게 됐다는 설도 있다. 정확한 내막이야 알 길이 없지만, 민주당이 행복한 고민에 빠졌던 것만은 사실이다.
야당은 재선, 3선 관록의 시의원들과 그 나름의 지명도와 역량이 있다는 기초단체장 후보들을 앞세워 인물 경쟁력으로 승부했다. 하지만 현장은 냉랭했다. “무슨 말과 행동을 해도 유권자들이 무반응으로 일관한 것이 더 무서웠다.” 국민의힘 부산진영 인사들은 지난 선거를 그렇게 회상한다. 반면 민주당 후보들은 온기가 도는 바닥 민심에 힘이 솟았다. 민주당 간판을 단 후보들에게 ‘묻지 마 한 표’를 던지겠다는 유권자가 더 많았다. 지난날 국민의힘 계열 후보들이 누렸던 ‘선거 축복’을 맛 본 셈이다.
이제 민주당 계열 선출직들은 특정 정당 중심의 해묵은 전통을 거둬낸 시민의 결단에 제대로 보답했는지 되돌아볼 때다. 그런데 민주당 부산권력의 지난 활동에는 후한 점수가 매겨지지 않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무심한 세태를 탄식하지 말고 어렵게 맞았던 ‘선거 축복’유지에 노력했는지 스스로 따져볼 일이다.
제8회 지방선거가 오는 6월 1일 실시된다. 여야 정치권은 후보 공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지금 부산에서는 국민의힘에는 사람이 넘쳐 고민이고, 민주당은 인물 찾기에 고심이라고 한다. 부산의 정치지형도가 이전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딱 들어맞는 진단은 아닐 테다. 4년 전 본때 있는 정치력을 보인 유권자들이 ‘묻지 마 한 표’의 구태를 더는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은 비전과 지역 발전 역량을 갖춘 후보 공천에 주력하길 바란다. 4년 임기의 작은 기득권에 안주할 사람보다는 분권시대 미래 지도자가 될 인물을 찾는 등 옥석 가리기를 제대로 하면 된다. 시민은 한층 냉정해진 정치력을 발휘해 그에 합당한 응답을 보낼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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