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이는 상태로 벌써 3번째 1월을 맞이했다. 문화기획자인 나는 펜데믹으로 가장 피해와 변화가 컸던 문화예술판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팬데믹에 직격타를 맞았다.
그런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 않은가. 인류는 세계대전 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일본에 주권이 빼앗겼을 때도, 6·25 전쟁으로 민족이 분단되었을 때도 문화예술의 생명력은 꺼지지 않고 이어왔다. 나는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그것도 고령화가 심화된 진해라는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하면서 이 팬데믹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만남의 방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일터나 취미, 생활에서 이미 비대면 만남은 대면의 대체가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흐름의 변화를 감안해 나는 우리 지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문화를 나누고 즐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동료들과 많은 논의를 했다. 그때, 우리와 지속적인 협업을 하고 있는 부산의 한 청년이 메타버스라는 카드를 내게 내밀었다. 고령화가 심화된 지역이지만 청소년, 청년층은 분명히 존재했고 어른 대상 문화예술사업들이 넘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소외되기 일쑤였다. 소수의 존재라도 등한시하면 안된다는 나의 멘토의 가르침이 떠올랐고 그들이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숱하게 많은 사업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우리 동네는 아카이빙에 대한 노력과 성과들이 부족하기에 좀 더 남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보고자 했고 이런 모든 것들을 고려했을 때 메타버스는 한번 시도해볼 만한 도전이었다.
‘언제까지 중앙에서 먼 작은 동네라서 뒤쫓아가기만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우리가 먼저 시도를 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새로운 경험의 기회도 제공하고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문화예술인들이 한발 빠르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보자 싶었다. 넘어야 할 숙제는 생각보다 많았다. 메타버스의 기본 기능조차 몰랐던 나와 동료들은 매주 저녁 모여 하나씩 만져보고 뜯어보고 나누기를 반복했다.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컨설팅을 해주시는 선생님과 지역·메타버스를 연결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논의했고 나는 전체 기획을, 전체 진행감독을 하는 청년은 기획 내용대로 구현을, 3D 모델링을 하는 청년은 맵핑을, 영상을 제작하는 청년들은 메타버스 내에 아카이빙하고 활용할 영상 및 메타버스 사용 설명 영상을 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경험이 있는 부산 청년의 조언과 디렉팅까지… 혼자라면 절대 할 수 없었던 것들은 함께해주는 동료들과 멘토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역에서 최초로 메타버스에서 문화예술시장을 열어보는 소소한 시도를 하는 것에 그쳤지만 참여하는 주민과 진행했던 청년들이 새로운 시도에 설렜고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특히, 주민들은 수십 년을 한마을에서 살았지만 잘 모르고 궁금했던 부분을 콘텐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고 앞으로는 직접 찾아갈 수 있겠다고 매우 기뻐했다.
메타버스에서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다. 블록체인이나 NFT 등은 제쳐두더라도 현실에서는 하지 못했던 것들을 실행해볼 수 있고 현실에서는 만나기 힘든 사람 공간 콘텐츠 등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에는 익명성이 한몫하기도 한다.
메타버스는 새로운 접촉의 방식으로 가능성이 무궁하다. 메타버스에서 문화기획을 하고 실행하며 느낀 것은 메타버스의 세상이 온다 하더라도 관계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나에게 메타버스를 권해주던, 방향을 잡아주던, 각자의 능력으로 구현해주던 사람들이 없다면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새로움은 귀찮음을 수반하는데 그 시도에 기꺼이 함께해준 주민들과 공방지기들이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이 분명하다. 메타버스는 새로운 시대를 열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어느 방식이나 변함없이 관계의 중요성을 놓치거나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관계를 잘 나누는 방식과 도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관계의 본질과 태도가 기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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