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being’이라는 영어 단어가 있다. ‘서로(inter)’와 ‘존재(being)’를 합성한 조어로,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이 서로 어우러져 살아가며 공존한다는 뜻이다. 지난 21일, 향년 95세로 입적한 베트남의 틱낫한 스님이 만든 단어다. 인간은 혼자선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라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렇기에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다른 사람의 처지를 배려해야 한다. “중생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부처님의 재가제자 유마거사의 자비심은 여기서 기인한다. 틱낫한 스님은 “남의 고통이 우리 고통이고, 남의 행복이 우리 행복”이라고 했다.

1982년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보르도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세우면서 으뜸 계율을 ‘모른다’로 정한 건 공존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공존하려면 먼저 나를 비우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나만 옳다는 아집과 독단이 내 안에 가득하다면, 타인의 언행이 자신의 눈과 귀에 들어올 틈이 없을 게다. 스님이 ‘무지(無知) 계율’을 강조한 건 그래서다. ‘모른다’는 선언을 통해 나를 비워 타인이 들어올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플럼빌리지에 부처와 예수의 사진을 나란히 걸어놓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스님은 “자신만 진리를 독점하고, 타인은 틀리다는 생각이 갈등과 폭력을 낳는다”고 했다.

틱낫한 스님은 남북한에도 귀중한 조언을 남겼다. “남북한 문제의 핵심은 핵무기가 아니라 서로 안의 두려움과 화다. 핵무기를 없애는 것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로의 고통을 들여다본 뒤 깊이 듣고 자애롭게 말하는 수행이 필요하다. 서로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 자애로운 마음을 가질 때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과 미국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파리평화회의에 불교대표로 참여하는 등 평생 평화운동에 매진한 스님이 2013년 방한했을 때 한 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처절한 전쟁의 고통을 겪은 사람답게 스님의 해법은 갈등의 근원에 닿아 있다. 북한 정권이 핵·미사일 개발에 집착하는 건 세계 1, 6위로 평가되는 미국과 남한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은 불통에서 연유한다. 타인에 대한 마음이 닫혀 서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는가. 따라서 두려움을 없애려면 소통을 해야 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inter-being’의 관계 구축이 필요하다. 세밑 틱낫한 스님이 우리에게 주고 가신 황금 같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