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빅 3 조선소 중 빅 2(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가 있는 경남 거제는 한때 불이 꺼지지 않는 항구였다. 조선업이 활황을 이루면서 흔히 말하는 ‘개도 만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 인구 25만 명 중 70% 이상이 조선업으로 먹고 살면서 부족함이 없었다. 원청과 협력업체 직원이 6만~7만 명에 달해 매달 임금으로 현금 4000억 원 이상이 조그만 도시에 풀렸으니 그럴 만 하다. 당연히 조선 작업복 차림의 노동자는 귀한 대접을 받았다. 예식장과 장례식장 등 어느 곳을 가더라도 작업복이 양복을 대신했다. 식당과 유흥가는 손님으로 넘쳐났다.
그런 불야성을 이루던 도시가 글로벌 경기 침체와 맞물려 7~8년 전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을 수주하던 물량은 급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149억 달러를 기록한 후 다음해부터 수주 물량이 큰 폭으로 줄었다. 2015년 44억 달러로 1/3 토막 났고, 2016년에는 15억 달러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삼성중공업도 2013년 135억 달러를 수주한 이후 급격하게 물량이 감소했다. 2014년 73억 달러, 2015년 53억 달러에 이어 2016년엔 불과 5억 달러에 그쳤다. 2016년은 양대 조선소 합쳐 21억 달러 수주에 그친 최악의 해였다.
수주 물량이 줄어들면서 일감이 부족하자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하나 둘 현장을 떠났다. 일감 부족으로 잔업과 특근 등이 사라지면서 임금도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수년 간 지속된 조선업 불황은 다른 업종을 찾아 떠나는 현장 이탈을 가속화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사내협력사 노동자는 최고 호황기에 3만 8000여 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9800여 명만이 남았다.
그런데, 인생에도 사이클이 있고 경제에도 사이클이 있다고 했는가.
지난해부터 조선업이 되살아나고 있다. 해외 물동량 증가와 노후화된 선박 교체 시기 등과 맞물려 수주 물량이 크게 늘었다. 대우조선해양은 107억 달러, 삼성중공업은 122억 달러를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이후, 삼성중공업은 2013년 이후 100억 달러를 처음 돌파했다. 이 같은 수주로 3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앞으로 친환경 선박과 스마트 선박 전환 등으로 조선업계 전망은 더 밝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일감이 있는데도 현장을 떠난 노동자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수주 물량이 일감으로 풀리는 특성을 고려하면 올 하반기부터 인력 수요가 폭증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장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똑 같은 돈벌이라면 노동 강도가 센 조선업 보다는 노동 강도가 약한 건설업 등에 남아 있는 것이 좋다는 판단에서다. 예전처럼 ‘거제가면 돈이 된다’는 말이 안도는 이상 한번 떠난 노동자는 돌아 오지 않는다고 한다. 주 52시간 근무에 막혀 잔업과 특근 등으로 보던 쏠쏠한 재미가 사라진 것도 한 원인이라고 입을 모은다.
업계에서는 인력수급의 가장 큰 문제는 임금이라고 단언한다. 기존 조선소 인력들이 빠져나가 일하고 있는 반도체 공장 등과 비교할 때 조선 협력업체 인건비는 70~80%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는 “협력업체 노동자 처우 개선을 하지 않고는 사람을 모아 쓰기 어렵다”고 단언한다.
업계는 정부와 지자체, 원청과 협력사가 특단의 대책 마련에 함께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정부는 조선 전문 인력을 꾸준히 양성하는 훈련소 확충 등에 힘써야 하고, 원청과 협력사는 시장 임금을 제대로 반영한 합리적인 도급계약을 체결해 마음 편히 일할 근로조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원청과 협력사가 상생하는 방안과 유연성 있는 근무조건 적용, 노동자 생활 임금 보장 등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거제시는 21일 양대 조선소 협력사 노조 등과 시민대토론회를 갖고 인력 수급 대책 방안을 모색한다.
조선업 인력난은 발등의 불이다. 호황기에 다시 접어든 기회를 놓쳐선 안된다. 일감은 있는데 일할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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