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갈대밭이 장관인 순천만습지는 사계절 적잖은 방문객이 찾는 명소다. 예전에 순천이라면 선암사나 송광사, 낙안읍성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순천만습지가 순천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 그 시작은 흑두루미였다. 2006년 순천시는 현재의 순천만보전과인 전담 부서를 만들어 습지 복원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사유지를 매입하고 흑두루미가 먹이활동을 할 수 있도록 무논을 조성하는 한편 시민과 함께하는 철새 지킴이 활동을 진행했다. 2009년에는 흑두루미가 먹이를 찾고 날아다니는 데 위험하지 않도록 순천만 갯벌 주변과 가까운 농경지의 전봇대 283개를 뽑아내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6년 200여 마리에서 2016년에는 전 세계 개체 수의 10%가 넘는 1400여 마리의 흑두루미가 순천만을 찾았다.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에서 보존을 택했던 순천시는 10여 년에 걸쳐 지자체와 시민이 함께 아끼고 가꾼 노력으로 흑두루미라는 생태관광자원을 얻었다. 일반 관광객이 흑두루미를 흔히 만나볼 수는 없지만 흑두루미를 위해 보존한 갯벌을 비롯한 순천만의 자연환경이 이들의 발길을 꾸준히 이끈다.
순천이 잘 알려졌을 뿐 새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지자체는 적지 않다. 주남저수지로 대표되는 경남 창원은 물론이거니와 고성군도 시민과 지자체가 함께 20년 넘게 새를 품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고성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독수리의 우리나라 최대 월동지다. 여름에 몽골에서 번식한 독수리는 겨울이면 한국을 찾아오는데 늘 먹이 부족에 힘겨운 새인지라 다른 종보다 사람의 도움이 더 절실하기도 하다. 고성에서는 1999년부터 민간에 이어 문화재청과 고성군이 먹이 주기에 나섰다. 꾸준한 보호 활동이 빛을 발해 해마다 몽골에서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를 찾는 독수리 2000여 마리 가운데 800여 마리가 고성 들녘에서 겨울을 난다. 고성군은 독수리 탐조와 먹이 주기, 생태 알아보기 등의 체험을 하는 독수리 축제를 열어 탐방객의 발길을 이끈다. 정부 공모사업에 제안한 ‘고성에서 몽골까지 날아라 고성 독수리’ 사업이 2년 연속 선정되면서 독수리 이동 경로를 따라 고성에서 몽골까지 가는 국제 생태관광 프로그램도 추진 중이다.
고성뿐만 아니라 창녕도 우포늪을 중심으로 한 따오기 복원사업에 2008년 뛰어들었다. 창녕군은 따오기 전담 부서와 함께 따오기복원센터를 운영해 야생 방사에 이어 자연 번식에도 성공했다. 국내 최대 규모 천연 늪이자 창녕의 대표적 관광자산인 우포늪과 동요로 불리며 친숙한 따오기가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거뒀다. 이제 김해시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이 있어 많은 이가 찾는 봉하마을 앞 화포천에서 황새 복원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가습지로 지정된 화포천 습지에선 1만여 마리의 철새가 겨울을 난다.
이들 지역은 모두 새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넘어 모든 생명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애썼다. 그 생명에는 우리 인간도 당연히 포함된다. 새들을 위해 자연을 가꾸자 인간에게도 쾌적한 환경이 마련됐다. 모든 생명이 그렇지만 새들은 특히나 환경 조건에 민감하다. 인간의 손을 타기 쉽다는 의미다. 새에게 우호적인 환경을 만들고 개체 수를 늘리는 건 금방 표시 나지 않는 고된 일이다. 새라는 생명이 얼마나 유리알처럼 허약한 존재인지는 인간의 경험이 말해준다.
여행비둘기는 미국 개척시대에는 북아메리카 대륙에 가장 흔했던 새로 1810년대에는 개체 수를 30억~50억 마리로 추산했다. 하지만 처음엔 고기나 깃털을 얻기 위해, 나중엔 단지 재미를 위해 마구 사냥한 탓에 100년 만인 1914년에 동물원에서 기르던 마지막 한 마리가 죽으면서 지구상에서 멸종했다. 우리 땅에서도 창녕에서 공들여 키우는 따오기처럼 외국에서 들여와 복원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이 적지 않다.
요즘 철새들의 월동지인 강원 속초 영랑호에 설치한 콘크리트 부교나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 절벽에 낸 잔도가 뜨거운 찬반 논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지자체가 관광 편의시설이라는 구실로 천혜의 환경에 인공 구조물을 설치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다만 관광객이 자연을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자연을 파괴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그다지 성과가 두드러지지 않는 새의 서식 환경을 지키는 일에 오랜 기간 꾸준하게 투자하는 지자체는 박수받을 만하다. 여러 지자체가 새가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은 관광객을 유인하는 데 앞서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독수리와 따오기, 황새에 공들이는 지자체들이 새와의 공존도 이루고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리라 본다. 그런 연후에 제2, 제3의 순천만습지 같은 관광 분야의 스테디셀러가 되는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오지 않을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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