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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카자흐스탄과 카라카소의 교훈 /이선정

자원부국서 연료비 급등, 반정부 시위로 민심 폭발

카라카스 참사와도 닮아…‘승리’선언보다 개혁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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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 벽두부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유혈 사태가 터졌다. 지난 연말 전쟁 경고등이 켜졌던 동유럽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이었다.

카자흐스탄 정부가 이달 초 차량용 액화석유가스(LPG)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가격상한제를 폐지하자 가격이 2배로 뛰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시민이 지난 2일부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전국으로 번지면서 반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시위가 격화하자 카심 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주요 도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시위대를 향한 발포를 명령, 유혈 사태로 번졌다. 자국 군경 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카자흐스탄 정부는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옛 소련권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구원군을 요청, 러시아 공수부대를 중심으로 한 2500명의 평화유지군을 불러들였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소요 일주일 만인 9일 시위대에 ‘승리’를 선언했다. 8000명 가까이 체포됐고 16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가운데 말이다. 사망자 중에서는 4세 여아 등 미성년자도 3명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비극이다.

카자흐스탄 소요는 30여 년 전 카라카소를 떠올리게 한다. 1989년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일대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인 카라카소는 많게는 수천 명이 희생됐다고 해서 카라카스 참사로도 불린다. 이 역시 정부의 보조금 축소와 이에 따른 물가 폭등으로부터 촉발된 반정부 시위였다. 남미 최대 산유국인 베네수엘라는 1970년대 오일쇼크 여파로 큰 부를 축적했다. 정부는 넘치는 돈으로 국민에 보조금을 뿌려댔고, 석유시설을 국유화해 정부 부담은 늘었으며,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정권을 위시한 정치는 부패해 갔다. 1980년대 들어 유가가 급락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국유 석유시설은 엄청난 부채로 돌아왔다.

재취임한 페레스 대통령은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긴축재정으로 보조금은 철폐됐고 이는 휘발유 및 교통비 2배 상승으로 이어졌다. 기름 많이 나는 나라가 이런 아이러니에 빠지자 베네수엘라 국민은 분노했다. 1989년 2월 부정부패한 페레스 정권을 상대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그러나 시위는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낳고 일주일여 만에 진압됐다. 비공식적으로는 사망자가 3000명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카자흐스탄은 베네수엘라만큼 자원부국이다. 중앙아시아 최대 산유국이고, 천연가스 매장량도 풍부하다. ‘에너지 대국’인 카자흐스탄 정부는 왜 가스 보조금을 없앴을까. 다국적 에너지 공급망과 관계가 있다. 보조금과 가격상한제로 외국계 에너지 회사가 LPG 공급을 꺼려 부족 현상이 종종 발생하자 이를 해소하고자 했다가 되레 자국민만 자극한 꼴이 됐다. 가뜩이나 2년에 걸친 코로나19로 인플레이션과 경제 양극화가 극심한데, 주로 서민이 이용하는 연료가격이 급등하자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부패한 정치도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의 한 원인이 됐다. 카자흐스탄은 구소련 붕괴 후 1991년 독립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 출신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초대 대통령이 그해 취임, 2019년까지 무려 28년간이나 장기집권했다. 제2대인 토카예프 현 대통령에게 정권을 물려줬지만 그는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계속 유지하며 권력을 놓지 않았다. 이런 권력집착에 신물이 난 카자스흐탄 시민은 이번 시위 때 “노인(나자르바예프)은 물러가라”고 외칠 정도로 정치·사회·경제개혁에 절박한 심정이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지금 국민을 상대로 승리를 외칠 때가 아니다. 닮은꼴 참사를 겪었던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근본적인 소요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카라카소 이후 부패 정치를 개혁하고 자원을 활용한 산업구조 개편, 신성장동력 찾기에 힘써야 했으나 오히려 극단적 포퓰리즘과 반미주의로 상징되는 우고 차베스 정권의 장기치하로 이어졌고, 미국의 경제봉쇄 등 여러 요인이 겹쳐 한때 세계 4위를 호령했던 경제강국이 지금은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허덕이는 빈국으로 추락했다.

사족이지만 이 와중에 패권국 옛 영광 재현을 노리는 러시아는 카자흐스탄 소요 사태를 계기로 슬그머니 ‘숟가락 올리기’에 나서 눈총을 받는다. 작년 말 벨라루스 ‘난민공격’과 2014년 크림반도 병합에 이은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침공 ‘으름장’으로 세력을 과시 중인 러시아는 자원까지 풍부한 카자흐스탄 정부의 갑작스러운 SOS에 ‘웬 떡이냐’ 했을 거다. 21세기에 내전도 아니고 반정부 시위를 막고자 남의 나라 군대가 들어온다는 게 말이 되는가. 또 그걸 자주국 카자흐스탄 정부가 요청했다는 점도 이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코로나19 팬데믹 2년, 생존권을 외친 민중봉기가 참사로 이어졌고 그것이 열강에게는 영향력 확대의 좋은 기회가 된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신문국 에디터 sj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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