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고서야 깨닫는 것이 인생인가 싶다. 코로나로 친구를 잃고, 친구를 기억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힘이 없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가 지나가면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 묘지 안내원은 돌다리가 그곳에 있을 거라고 했다. 여러 번이나 돌고 돌아 헤맨 끝에 가파른 산비탈을 내려가서 후미진 곳에서 다리를 건너 개울가의 자그마한 땅, 나무 그늘 아래에 친구가 묻힌 곳을 찾았다. ‘세 번이나 나는 안으려고 시도하였고, 세 번이나 안긴 환영은 헛된 손을 빠져나갔다. 가벼운 바람처럼, 덧없이 날아가 버린 꿈처럼.’ 벗들과 배움을 가까이하던 친구는 그렇게 떠나갔다.
친구를 전송하러 바닷가에 나온 친구가 있었다.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배를 타고 그리스 여행을 떠나던 날이었다. ‘내 영혼의 반쪽’을 싣고 아드리아해를 건너갈 배에 친구는 친구를 맡기며 무사히 이탈리아로 다시 데리고 와달라고 기원하였다. 이 여행이 시인 베르길리우스에게 돌아오지 못할 여정이 될 걸 예감한 듯하다. 먼 바다로 나가는 배를 바라보던 친구는 불길한 예감에 근심하다가, 마침내 이 모든 일의 원흉이랄까, 인간의 무모함과 불경을 원망한다. 심장에 철갑을 두르고 광기 어린 바다로 처음 길을 나선 겁 없는 자는 누구였던가? 현명한 신이 갈라놓은 바다를 건너겠다고 인간이 불경한 배를 만들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아니, 애초 프로메테우스가 신을 속이고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던 그 날이 없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다이달로스는 날개로 하늘에 도전하였고, 헤라클레스는 살아서 망자들의 하계를 침범했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하늘에 맞서니, 유피테르의 벌로 대지에는 쇠약과 열병이 창궐하는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친구를 귀하게 여기고 우정을 중시하는 것은 친구가 또 다른 자신이고, 우정이 사람 됨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것은 향기로운 지초와 난초가 가득한 방에 들어간 것과 같아 오래되면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지만 선한 사람에 동화되고, 선하지 못한 사람과 사귀는 것은 생선 가게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 오래되면 그 냄새를 맡지 못하지만 선하지 못한 사람에 동화된다고 하였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아름다움을 사랑하며 이를 가까이하여 닮아가며 비슷해지려고 한다. 때문에 자식을 둔 부모는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훌륭한 것을 보여주고 그런 친구를 사귀도록 독려한다.
하지만 참된 친구를 얻는 것은 가히 기적이다. 술과 음식을 먹을 때는 형이요, 아우요 하는 친구가 천 명을 헤아리더니, 어려운 일이 닥치면 도와줄 친구를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더라는 옛말을 보라! 최초의 로마 건국 서사시를 쓴 엔니우스는 “확실한 친구는 불확실 속에서 확인된다(amicus certus in re incerta cernitur)”고 말했다는데, 이 또한 결국 불행을 함께 할 친구는 드물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말이다. 대부분의 인간관계가 사랑 때문에, 돈과 권력이나 명예 때문에 시작되고 그것들이 사라지면 이내 관계가 소원해진다. 하지만 이런 이득들을 떠나 그저 아름답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에게 이끌려 그를 사랑하게 된 마음도 불확실한 상황을 겪으면서 위기를 맞는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불의한 일을 부탁하고 우리를 욕망의 시종이나 불의의 조력자로 끌어들인다고 해 보자. 물론 불의를 거절하는 것이 바르고 옳은 일이지만, 나는 너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너는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느냐는 불평을 듣게 되면, 우리는 배신자라는 불평을 듣기 싫어서, 서로 간의 반목과 갈등이 두려워서 원치 않지만 불의에 동참하게 된다.
우정이 어렵고 지극히 어려운 것이니, 로마의 지성을 대표하는 철학자, 정치가 키케로도 그의 시대까지 줄잡아 1200여 년의 역사를 훑어보아도 우정을 보여준 참된 친구는 불과 세 쌍 내지 네 쌍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키케로가 뽑은 우정 중 하나가 오레스테스와 필라데스의 우정인데, 당시에 무대에 자주 오르는 주요 공연 주제였다고 하니, 로마인들도 우정이라는 덕을 매우 귀하게 여겼음이 분명하다. 이들을 다룬 어느 비극의 한 장면에서,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는 필라데스와 함께 사형의 죄를 짓고 어느 왕의 심판대 앞에 나란히 섰다. 왕은 사형의 벌을 받을 오레스테스가 둘 중에 누구냐고 물었고, 필라데스는 오레스테스를 대신하여 죽을 각오로 “내가 오레스테스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레스테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사실 내가 오레스테스요”라고 말했다. 이 순간,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는데, 자신들은 감히 할 수 없는 자기희생의 아름다움에 감동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귀하고 소중한 친구와 기적과 같은 우정을 잃고 보니 모든 것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남겨진 친구들의 의무는 거짓과 불의를 멀리하고 욕심 없이 살아간 친구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친구를 닮아가는 것이리라.
로마문학 박사·정암학당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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