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이것은 여러 사람이 협력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그 위에 ‘생명수’를 담은 셀 수 없이 다양한 컵이 놓여 있다. 누구나 자신이 생산한 생명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 있지만 이것을 마시려는 사람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테이블에 올라오는 생명수가 시나브로 적어지고 테이블에 엎질러진 물의 양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 생존의 우려를 넘어 우리는 공멸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세 가지 가능성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첫째, 개인의 행태적 측면이다. 생명수 공급자는 손해를 보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하기 때문에 테이블에 올려놓는 양은 제한적이다. 부자들이 필요 이상으로 가져가면 빈자에게 돌아갈 몫이 적어질 것이다. 이에 불만을 품는 개인이 물컵을 엎어버리는 행위를 할 수도 있다. 또 공급자나 구매자 모두 조심성이 없어 물을 낭비할 수도 있다. 둘째, 사회 구조적 측면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현재 테이블 위치가 습한 곳에 있어 물이 쉽게 썩어, 햇볕이 드는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자. 그러면 ‘옮기자파’와 ‘지키자파’ 간 논쟁이 시작되고 양측이 테이블을 움켜쥐고 경쟁할 때 수많은 물컵은 넘어질 것이다. 한편 특정집단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담합하여 테이블을 완력으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셋째, 자연현상 측면이다. 강풍이 불거나 지진으로 지반이 흔들려 수많은 물컵이 넘어질 수 있고 가뭄으로 물의 양이 줄거나 강한 햇볕으로 물이 증발할 수도 있다. 우리는 안다. 개인의 행태 변화보다도 사회적 구조 변화가 발생할 때, 그리고 자연 변화가 일어날 때 ‘수많은 물컵’이 넘어지고 사라진다는 것을.
지금까지 우리는 행태적 요인과 사회 구조적 요인 등 인위적인 요인과 자연현상적 요인은 서로 연관이 없이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전제하에 형태적 문제는 개별적 차원에서 범죄행위는 법으로, 조심성 없는 부분은 윤리적 규범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 구조적 문제는 합리적 제도를 만들어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런 인위적인 문제는 국가적 단위에서 처리해도 충분하다. 반면 자연환경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므로 우리 스스로 그 결과를 감당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도록 개별 국가가 방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북극의 빙하가 녹을 만큼 전례 없는 이상고온, 특정 지역의 이상 집중호우 가뭄 산불 폭염 한파와 더 강해진 태풍,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의 창궐 등으로 인간이 생명권 건강권 주거권 등을 침해받으면서 공동체가 위협을 받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변화는 인간의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그룹이 과학자 집단이다. 이들은 자연환경 변화는 개인의 경제적 활동, 에너지와 산업구조와 연계된 사회적 구조적 산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올해 ‘기후변화 관련 정부 간 협의체(IPCC)’의 6차 보고서는 자연환경 변화 중 기후변화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임을 명시했고, 인간이 대기 해양 토지의 온난화 현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과학적으로 자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이 문제는 개인의 행태, 사회적 구조와 자연환경을 국가 차원이 아닌, 전 인류 차원에서 시스템적 사고방식으로 풀어야 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의 생활 방식, 에너지 형태와 산업구조 등의 대전환을 요구하는 사태이다.
기후변화는 현실이며 인류에게 책임이 있음을, 그리고 그 영향은 심각한 수준이고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함을 과학자들은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화석원료 에너지 사용에 대한 선진국과 개도국 간 책임소재 문제와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로 거의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스웨덴 십 대 소녀 툰베리는 유엔에서 각국 정상과 정부 대표를 향해 이렇게 외쳤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는데 당신은 돈과 영원한 경제성장이라는 꾸며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면 정치인의 발언과 나름대로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이번 대선주자들은 너무 조용하다. 앞으로 정녕 우리의 삶은 안전하겠는가?
한국해양대 국제무역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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