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서 2021년 올해의 검색어를 발표했다. 국내외를 통틀어 상위 10위 안에 공통적으로 랭크된 단어는 오직 하나인데, 바로 ‘오징어 게임’이다. 456명의 사람들이 참여해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은 단 1명의 사람이 상금 456억 원을 받아 간다는 설정의 이 드라마는 유례없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오징어 게임’은 돈에 쪼들려 소위 실패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며 그것을 소수의 돈 많은 사람이 즐기고 관람한다는 다소 자극적인 설정의 드라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이들이 열광한 이유 중 하나는 이야기의 토대가 되는 불평등으로 인한 비인간적 사회의 모습이 만국 공통으로 퍼져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지나친 경쟁과 물질만능주의, 생명 경시와 같은 이 시대의 문제를 풍자하고 있는 드라마는 결국 “무엇이 인간인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를 묻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징어 게임’ 작품을 통해 비판해야 할 세계에 대한 이야기는 온데간데없고, 전 세계 시청 순위 1위라는 사실만 남아버린 듯 하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연령 제한 때문에 드라마를 볼 수는 없지만, 수많은 매체에서 ‘오징어 게임’을 이야기하는 바람에 내용을 모를 수 없다. 인디고 서원에서 함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청소년들은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할 수 없는 지점들이 많다고 말한다. 다른 경쟁자들은 모두 죽고 홀로 1등이 되어 큰돈을 거머쥐게 되는 상황 그 자체에 대해서도,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믿어준 상대를 배신하고 속여야 한다는 조건에 대해서도, 사회로 돌아갈 기회가 있는데도 목숨을 걸고 경쟁에 뛰어드는 집단적 선택에 대해서도 모두 지금과 같은 모습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열광할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드라마 속 의상을 따라 입고, 드라마 속 게임을 따라 하는 것이 유행이 되는 일이 드라마 속 세상보다 더 끔찍한 일이라고 청소년들은 말한다.

나아가 몇몇 청소년들은 ‘오징어 게임’ 속 처절한 경쟁의 상황이 현재 학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며, 공부를 못하거나 시험을 잘 치지 못하면 급식 먹는 순서에 차별을 두거나, 공공연히 성적을 발표해 창피를 주는 일이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말한다. 수많은 청소년이 학교에서 시험의 결과로 자신이 평가당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경쟁의 가장 잔인한 점인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모두가 강요받았다는 사실’ 역시 ‘오징어 게임’과 닮았다고 말한다. 결국, ‘오징어 게임’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우리 현실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물음은 작품처럼 모두 죽고 한 명만 살아남는 구조를 우리가 원하느냐는 것이다.

인간이 상상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인간다움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현실이 암담하고 가혹할 때, 혹은 부정의하고 불평등할 때, 그런 세상으로부터 도망쳐 잠시 세상과 떨어진 곳에 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이야기다. 그것을 통해 웃고 울고 화내고 공감하며 인간다운 마음을 회복해 다시 현실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야기의 진짜 힘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웃고 울고 분노하지 않고, 자신의 마음과 감정은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변죽만 울리느라 현실에 돌아가지 못한 채 암담한 현실을 각자 외롭게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청소년들은 ‘오징어 게임’을 보며 즐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발견하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쟁하지 않을 자유, 함께 살아갈 의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 모두는 이 세계의 일부이고, 우리 모두의 선택은 반드시 다른 존재에게 영향을 끼친다. 모든 존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야만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오징어 게임’ 속 주인공처럼 오직 혼자 살아남아 쓰지도 못할 돈을 거머쥔 채 쓸쓸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만장일치로 죽음의 게임을 끝내고, 함께 살아갈 방법을 도모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자. 새해는 그런 시간이 가득하길 기원한다.

인디고잉 편집장